현즙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지중추부사, 호서절도사, 공홍병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이괄의 난
  • 사망 연도1624년(인조 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함경도첨사|무산첨사|제주목사|남도병사|지중추부사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상배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후기 지중추부사, 호서절도사, 공홍병사 등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1599년(선조 32) 위원군수(渭原郡守)를 거쳐 함경도첨사·무산첨사를 지냈다. 1610년(광해군 2) 온성부사에 임명되어 북쪽의 변방을 담당하다가 제주목사로 부임받아 다시 남쪽으로 부임하였다.

그 뒤 남도병사를 거쳐 1616년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1618년 이항복(李恒福)의 죽음을 ‘졸서(卒逝)’로 표현했다 하여 탄핵을 받아 추고되었으나 2년 후에 다시 호서절도사로 임명되어 외지로 나갔다. 1621년 공홍병사(公洪兵使)를 지냈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난 이후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키자 도원수 장만(張晩)과 함께 중군에 임명되어 토벌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이괄의 난에 연루되었다고 모함을 받아 참형에 처해졌으며, 5년이 지난 후인 1627년(인조 5)에 누명을 벗고 관작이 복구되었다.

무산첨사와 제주목사로 있을 때는 군대를 잘 훈련시키고 성지를 부지런히 수리한다는 평을 들었으나 말년에 이르러서는 백성들을 수탈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으며, 무신으로서 이항복의 사당을 지어 제사지낼 것을 청하였다가 사헌부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인조실록(仁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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