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난 이후인 9월 수신사 박영효(朴泳孝) 일행이 일본에 가게 되었는데, 이 때 이수정은 일본의 문물제도를 시찰하기 위하여 특별히 이 사절과 함께 동행한 민영익(閔泳翊)의 개인수행원으로 가게 되었다.
이 사절단의 박영효·민영익 일행은 3개월 넘어 체류한 뒤에 귀국하였으나, 이수정은 일본에 남아서 동경외국어학교(東京外國語學校)의 한국어교사로 있게 되었다. 일본에 체류하는 동안 일본의 농학 권위자인 쓰다(津田仙)를 통하여 기독교를 알게 되었고 1883년 4월 세례를 받았다.
그의 기독교 입교는 동경에 주재하고 있던 미국선교사들을 흥분시켰고, 특히 미국성서공회의 총무로 있던 루미스(Loomis, H.)목사는 앞으로의 한국선교를 위하여 그에게 복음서를 한글로 번역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이수정은 이 청탁을 받아들였고, 그가 세례를 받은 지 두 달 만에 제일 먼저 번역한 것이 『현토한한신약성서』이다. 이 성서는 최초로 번역된 우리말 성서이다. 이 번역본은 1884년 일본의 요코하마(橫濱)에서 출판되었다.
주로 한문성서를 원본으로 하여 거기에 우리말 토를 달아서 읽기 쉽게 번역한 성서이며, 이 성서번역 다음에 두 번째로 『신약마가젼복음셔언』을 번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