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본. 『형세언(型世言)』(1632)은 명나라 말 육인룡(陸人龍)이 지은 백화(白話) 단편소설집 『형세언』을 번역한 것이다. 조선시대 궁중의 여인들이 주 독자층이었던 낙선재문고의 하나로, 현재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있다.
‘型世言’이란 책명은 ‘세상의 틀이 될 만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낙선재본 『형세언』의 크기는 28.8×21.6cm이며, 1면 12행, 1행은 26자 내외로 쓰여 있다. 권1·2는 없고, 현재 4책(권3·4·5·6)만 전해진다. 그러나 전체 분량이 몇 권이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낙선재본은 전체 작품을 ‘의사(義士)’·‘의녀(義女)’·‘패행(悖行)’·‘명장(名將)’ 등으로 분류하고, 회목명(回目名) 대신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뎐’이라 표기하고 있다. 「뉵중함뎐(陸仲含傳)」·「님ᄉᆞᆷ보뎐(林森甫傳)」·「요거인뎐(姚居仁傳)」·「니무션뎐(李懋先傳)」·「왕면뎐(王冕傳)」·「심이모뎐(沈爾謨傳)」·「진봉의뎐(秦鳳儀傳)」·「경식뎐(耿埴傳)」·「심실뎐(沈實傳)」·「왕계란뎐(王季蘭傳)」·「왕ᄎᆔ요뎐(王翠翹傳)」·「석박뎐(石璞傳)」·「쥬개뎐(朱凱傳)」·「항신신뎐(項藎臣傳)」·「심희의뎐(沈希儀傳)」등 총 15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의사류가 9편, 의녀류·패행류·명장류가 각 2편씩 실려 있다.
내용의 대부분은 『황명종신록(皇明從信錄)』 등의 명대 사서와 필기소설, 민간에 전래되던 고사를 바탕으로 하여 그 사료 가치가 풍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특정한 환경 속에서 형성된 이 작품은 그 당시 사상적 토대와 윤리규범을 탈피하지 못했다. 또한, 작가가 소설의 형식을 빌어 세상을 구원하려 하고 선을 권면하는 등 설교적인 요소를 면치 못했다. 예컨대 봉건예교, 인과응보, 충효와 절개 등을 선양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형셰언』의 번역 형태는 의역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생략과 축약현상이 심하다. 매회 서두의 개장시(開場詩)와 입화(入話)가 생략되었으며 본문 중의 시사(詩詞), 말미의 산장시(散場詩), 육운룡(陸雲龍)의 평, 미비(眉批) 등은 모두 생략되었다. 구문이 누락된 부분을 작은 글씨로 첨기한 것으로 보아 여러 차례 전사를 거친 듯하다. 고어와 고문체가 현저하게 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늦어도 18세기 경에 번역 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형세언』은 그 동안 그 이름만 알려졌을 뿐 중국에서도 그 원본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서문과 삽화가 실려 있는 권수 1책을 제외한 11책 원본 『형세언』이 거의 완전한 상태로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의 가치는 세계적으로 단 1부밖에 없는 유일본이란 것이다. 또한 『형세언』의 해적판으로 밝혀진 ‘삼각(三刻)’이나 ‘별각(別刻)’이 잔본으로 남아 있어, 지금까지 원본의 내용을 제대로 알 수 없었던 것을 전 40회가 그대로 수록되어 있는 『형세언』을 통해 작품의 전모를 알 수 있게 되었다는 데 있다.
이 책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국립중앙도서관 장서인 완산 이씨(完山 李氏)에 의해 기록된 『중국역사회모본(中國歷史繪模本)』(1762)인데, 『형세언』의 원전 삽화 1장도 회모(繪模)되어 실려 있다.
『형세언』의 원전과 번역본의 발견으로, 풍몽룡(馮夢龍)과 능몽초(凌濛初) 등과 비슷한 시기에 육인룡이라는 의화본 소설 작가와 육운룡(陸雲龍)이라는 탁월한 평자가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일형(一型)’이 ‘삼언이박(三言二拍)’과 함께 문학사 전면에 등장하게 됨으로써 중국문학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깊다. 낙선재본 『형세언』의 존재로 『금고기관』 외에도 중국 화본소설이 일찍부터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읽혔음을 알 수 있다.
국어학적으로 살펴보면, 어두 합용병서로 ‘○’, ‘ㅼ’, ‘ㅳ’, ‘ㅄ’, ‘ㅶ’, ‘ㅺ’가 쓰이고, 구개음화와 두음법칙이 표기에 반영되지 않았다. ‘ㅎ’종성체언의 ‘ㅎ’은 탈락되지 않고 그대로 쓰였다. ᄒᆞᄅᆞ(一日)가 ‘ᄒᆞᆯᄂᆞᆫ’, ‘ᄒᆞᆯᄅᆞᆫ’, ‘ᄒᆞᆯ리’으로 곡용하고, ‘○’이 ‘남기’, ‘남긔’, ‘남글’ 등으로 곡용한다. ‘∼닝이다’, ‘∼링잇가’, ‘∼링잇고’ 등의 어미가 쓰이고 있다.
또 ‘ᄀᆞᆯ온, ᄀᆡ다, 거우다, 닐ᄯᅥ나다, 둣덥다, ᄠᅳᆺᄃᆞᆺ다, 무으다, 미조ᄎᆞ다, 벙으다, 벙으리왇다, ᄇᆡ야다, 브드이다, 븻○이다, 숫두어리다, 아쳐ᄒᆞ다, ᄌᆞ져ᄒᆞ다, 져쥬다, 굿기다, ᄆᆡ믈ᄒᆞ다, 맛ᄀᆞᆺ다, 슬겁다, 잇브다’ 등의 고어가 많이 쓰여 있어 근대 국어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낙선재 번역소설 가운데 『빙빙전』·『후수호전』과 함께 가장 오래된 번역본 가운데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