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역자 미상의 번역 소설이다. 120권 117책 필사본으로 중국 청나라 때의 소설 『홍루몽』을 완역한 것이다. 필사 연대 등은 밝혀져 있지 않지만 1884년 전후에 고종의 명으로 번역됐다고 한다. 이 소설은 등장인물이 500여 명에 달하는 장편으로 우리나라 장편 가문소설과 비견된다. 소설의 내용은 세 젊은이의 사랑과 혼인 문제, 가씨 집안의 흥망성쇠에 관한 것이다. 원전의 방대함으로 번역 과정에서 풍부한 우리말 어휘의 활용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홍루몽』은 근대국어 연구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120권 117책(권24, 54, 71 유실). 필사본. 중국 청(淸)나라 건륭(乾隆) 때의 소설 「홍루몽(紅樓夢)」 120회를 완역한 것이다. 현재는 그 중 3권이 없어지고 117책이 남아 있다.
책의 크기는 28.3㎝×18.2cm이다. 표지에 ‘홍루몽’이란 제목과 회목(回目)을 쓴 별지를 붙이고, 본문 상단에 주필로 원문을 싣고 옆에 한글로 중국어 발음을 표기했으며, 하단에는 우리말 번역을 수록했다.
1면은 8행이며, 1행은 18자 내외로 가지런하다. 회목과 시사(詩詞)의 경우에는 두 칸을 내려썼다. 원문도 8행이지만 옆에 글자마다 발음이 달려 있어 크기가 작고 행의 길이는 하단의 역문 내용에 맞추었기 때문에 각각 다르다.
역문에는 부분적으로 간단한 쌍주(雙註)가 있는데, 주로 고유명사나 중국의 고금 문물제도 중 당시 우리 독자들이 알기 어려운 것에 대해 달았다.
번역자나 필사 연대 등은 책 속에 밝혀져 있지 않으므로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가람(嘉藍) 이병기(李秉岐)의 말에 따르면 1884년(고종 21) 전후에 이종태(李鍾泰)가 고종의 명으로 수십 명의 문사를 동원하여 번역했다고 한다.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이른 「홍루몽」 완역본으로 알려져 있다.
「홍루몽」의 판본으로는 80회본과 120회본이 있는데, 80회본은 필사본이다. 120회본은 고악(高鶚)이 쓴 40회본을 덧붙여 1791년경 정위원(程偉元)에 의해 간행된 것으로 ‘정갑본(程甲本)’이라 한다. 이 ‘정갑본’을 개정한 것이 1892년에 간행되었다는 ‘정을본(程乙本)’이다.
「홍루몽」의 번역과 완전히 일치하는 원본 판본은 알 수 없으나, 다만 정각본(程刻本) 이후에 출현한 ‘본아장판본(本衙藏板本)’이나 1832년 간행된 ‘왕희렴판본(王希廉板本)’ 등이 가장 근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소설은 등장인물이 500여 명에 달하는 장편 대하소설로, 우리나라의 장편 가문소설과 비견된다. 주인공은 옥을 입에 물고 태어나, “여성은 맑고 깨끗한 물로 되어 있고 남자는 더러운 진흙으로 되었다.”고 말할 정도로 여성주의자인 가보옥(賈寶玉)과, 총명하지만 병약한 그의 사촌 누이동생 임대옥(林黛玉), 그리고 가정적이며 건강한 설보채(薛寶釵)이다.
많은 사람들의 사치와 대관원(大觀園) 등의 건축으로 차차 기울기 시작하는 가씨 집안에서, 보옥은 보채에 대해서도 호감을 가지지만 대옥을 더 사랑한다.
그러나 보옥이 집안의 계략으로 설보채와 마음에 없는 혼인을 함에 따라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안타까운 그리움 속에 죽음의 결별로 끝나고 만다. 가보옥은 마침내 사랑의 허무함을 절실히 깨닫고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는 출가하고 만다. 「홍루몽」의 이야기는 바로 그가 인간세상에서 겪은 19년간의 사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내용을 형성하고 있는 또 하나의 커다란 줄기는 앞의 세 젊은이의 사랑과 혼인이라는 문제 외에도 가씨 집안의 흥망성쇠 과정에 관한 서술이다.
이 집안은 개국공신의 후예로서 이미 백년 가까이 온갖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사치와 낭비를 일삼아왔다. 집안에는 이미 장래를 진지하게 걱정하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다.
가문의 체통과 규율을 책임져야 할 가보옥의 백부와 부친은 각각 책임을 통감하지 못하고, 실질적으로 일을 맡아보는 그의 종형제들은 방탕한 생활만을 열심히 추구하고 있을 뿐이다.
할머니 사태군(史太君)은 집안에서 가장 연로한 어른으로서 존경과 추앙을 한 몸에 받고 있지만, 미처 가문의 몰락을 감지하지 못하고 그저 귀여운 손자 손녀들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가보옥의 외사촌 누나이면서 동시에 사촌 형수가 되는 왕희봉(王熙鳳)은 수백 명에 이르는 집안 식구를 관리하며 강력한 권세를 휘두른다. 그러나 사리사욕을 채우다가 마침내 가문의 몰락을 초래하여 죽음에 이르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다.
마치 먹이를 다 먹은 새들이 각기 숲 속으로 날아가듯이 집안은 와해되어 갔으며, 그 와중에서 주인공 가보옥은 더더욱 인생과 사회에 대한 쓰라린 회한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이 소설은 등장인물의 성격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긴박감 넘치는 구성 및 유려한 문체로 청대의 으뜸가는 소설로 꼽히며, 1792년 ‘정을본’이 초간된 이래 100종 이상의 간본과 30종 이상의 속작이 나왔다.
낙선재 번역본은 「홍루몽」 외에도 5종의 속작까지 번역했지만 소수 궁중의 여인들에게만 읽힌 듯 널리 유통되지 못했으며, 우리나라 국문소설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였다. 이보다 훨씬 이전에 나온 「완월회맹연」 등의 장편 대하소설과는 아무런 영향 관계가 없다.
다른 중국 통속소설 번역본과는 달리 대역본의 형태를 취하고 중국어 발음을 한글로 표기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중국어 교재로서의 이용도 고려한 듯 하나 발음 표기에 오류가 너무 많아 정확성이 크게 떨어진다.
그러나 「홍루몽」 원전의 다양한 내용과 분량의 방대함으로 인해 풍부한 어휘 자료를 담고 있고, 이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그에 상응하는 우리말 어휘의 활용을 보여주고 있으며, “거후로다, 밋브다, 벅벅이, 셰답ᄒᆞ다, 시러곰” 등 고어의 흔적이 역력하기 때문에 근대국어 연구자료로서도 그 가치가 높다. 장서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