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과천삼강어사, 경기암행어사, 금성현령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수찬 재직시 문정공 송시열(宋時烈)이 원수를 갚아 부끄러움을 씻기를 주장한 의리와 송준길(宋浚吉)이 대의(大義)를 함께 협찬한 공을 논해 종사(從祀)하기를 주장하였다. 1755년 문학을 거쳐 재차 수찬직을 맡았다가 정언을 지냈다.
이듬해 부교리로 재직 중 이언형(李彦衡)과 김상도(金相度)의 당인(黨人)으로 낙인찍혀, 삭거사판(削去仕版: 벼슬아치의 명단에서 이름이 삭제됨)되고, 아울러 아버지 홍계희(洪啓禧)도 판윤에서 경성부사(鏡城府使)로 밀려났다.
그러나 곧 부수찬에 복귀했다가 이듬해 경기어사(京畿御史)를 거쳐 영광안핵어사(靈光按覈御史)로 파견되어 대동미의 납부를 일시 정지하도록 하였다. 이어 충청도 단양·회인 안집어사(安集御史)로 파견되어 진휼에 힘썼고, 호서안집어사(湖西安集御史), 충청도 청안안집어사(淸安安集御史)로 파견되어 흩어진 백성을 안집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듬해 과천삼강어사(果川三江御史)·경기암행어사(京畿暗行御史) 등을 지냈다. 정언 박지원(朴志源)의 탄핵으로 부자(父子)가 함께 곤욕을 치른 뒤 여러 번 삼사(三司)의 관직을 사직했기 때문에 그를 내쳐서 금성현령(金城縣令)으로 제수하였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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