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후기에, 어사중승, 첨의시랑찬성사 판전리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세자(충렬왕)를 호종해 원의 대도(大都)에 갔는데, 원 세조(世祖)의 명으로 고려 1품직에 올랐으며, 원의 좌부승선(左副丞宣)의 직을 받았다. 귀국해서는 국정의 문란을 한탄하며 사직하였다. 다시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가 되었으나 또 사퇴했는데, 이 때 나이가 40세도 안 되었다.
그 뒤 충렬왕과 공주가 양가(良家)의 여자를 징발해 원나라에 보낼 때, 딸이 징발되자 이를 기피한 죄로 해도에 귀양갔다. 결국 두 딸이 모두 원나라에 뽑혀가고 가산까지 적몰되었다. 중찬(中贊) 김방경(金方慶)과 홍규의 종형 홍자번(洪子蕃) 등이 홍규가 이전에 국가에 큰 공을 세운 점을 들어 면죄를 간청하였다.
가산이 반환되고 곧 풀려나, 이듬해 첨의시랑찬성사 판전리사사(僉議侍郎贊成事 判前理司事)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그 뒤 중찬을 더하고 이어서 판삼사사 수사도 영경령궁사(判三司事 守司徒 領景靈宮事)가 되었다.
충선왕이 즉위하자 익성군(益城君)에 봉해지고, 또 첨의정승 익성군 지익성부사(僉議政丞 益城君 知益城府事)에 올랐다. 1316년 추성진력안정공신 남양부원군 상의첨의도감사(推誠陳力安定功臣 南陽府院君 商議僉議都監事)에 이르러 별세하였다. 시호는 광정(匡定)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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