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중순(仲諄). 홍중기(洪重箕)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현보(洪鉉輔)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이며, 어머니는 이집(李潗)의 딸이다. 사도세자의 처남이다.
그가 23세 되던 1762년(영조 38) 사도세자 죽음을 맞이하였고, 그 뒤 왕세손을 보필하는 설서(說書)의 관직을 맡아 직분을 다하였다. 1766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예문관검열 권점에 수망(首望: 일등 후보자)으로 뽑혔고, 이어 정언(正言)에 제수되었다가 그 후 부교리·겸문학 등을 거쳐 과천어사(果川御史)로 파견되기도 했다.
이어 수찬·겸문학·교리를 거쳐, 1769년 사서·수찬 등을 역임하던 중 동지사(冬至使) 한광회(韓光會), 부사(副使) 박도원(朴道源)과 함께 동지사 서장관으로 임명되었다. 부교리로 재직 중 지제교(知製敎)를 지낸 유신에게 보인 시험에서 지차의 성적으로 옷감이 하사되었으며, 1774년 승지로 발탁되었다.
정조가 즉위한 뒤 그의 형제들을 군직(軍職)에 붙여 혜경궁 홍씨에게 문안드릴 수 있도록 배려되었고, 1795년(정조 17)에는 특별히 가자하여 동지돈녕부사의 자리를 가설하여 제수하였다. 1797년에는 지돈녕부사에 제수되었다가 이듬해에 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