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낙신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수찬, 승지, 동지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중순(仲諄)
인물/전통 인물
  • 본관풍산(豊山,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
  • 사망 연도1796년(정조 20)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사서|수찬|승지|동지돈녕부사
  • 출생 연도1739년(영조 1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홍갑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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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수찬, 승지, 동지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중순(仲諄). 홍중기(洪重箕)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현보(洪鉉輔)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이며, 어머니는 이집(李潗)의 딸이다. 사도세자의 처남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그가 23세 되던 1762년(영조 38) 사도세자 죽음을 맞이하였고, 그 뒤 왕세손을 보필하는 설서(說書)의 관직을 맡아 직분을 다하였다. 1766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예문관검열 권점에 수망(首望: 일등 후보자)으로 뽑혔고, 이어 정언(正言)에 제수되었다가 그 후 부교리·겸문학 등을 거쳐 과천어사(果川御史)로 파견되기도 했다.

이어 수찬·겸문학·교리를 거쳐, 1769년 사서·수찬 등을 역임하던 중 동지사(冬至使) 한광회(韓光會), 부사(副使) 박도원(朴道源)과 함께 동지사 서장관으로 임명되었다. 부교리로 재직 중 지제교(知製敎)를 지낸 유신에게 보인 시험에서 지차의 성적으로 옷감이 하사되었으며, 1774년 승지로 발탁되었다.

정조가 즉위한 뒤 그의 형제들을 군직(軍職)에 붙여 혜경궁 홍씨에게 문안드릴 수 있도록 배려되었고, 1795년(정조 17)에는 특별히 가자하여 동지돈녕부사의 자리를 가설하여 제수하였다. 1797년에는 지돈녕부사에 제수되었다가 이듬해에 졸하였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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