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사간원정언, 승지, 김포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어 양주암행어사를 거쳐, 이 해 말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에 제수되었다. 이듬해 호서안핵어사(湖西按覈御史), 경기의 교동(喬桐)과 해서(海西)의 연안(延安)·배천(白川) 등지의 암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 왔고, 문관출신의 비변사낭청으로 이름이 높았다.
1794년(정조 18) 명릉(明陵)의 친제시 대축(大祝)의 공으로 가자되었고, 이어 충청도어사 및 호서위유사의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 왔다. 이듬해 정언으로 재직 중 민사선(閔師宣)의 탄핵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1797년(정조 21) 승지로 재직 중 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김포군수(金浦郡守)로 좌천되기도 했다. 순조가 즉위하자 집권한 벽파(僻派)에 의해 내몰린 김이익(金履翼) 등이 제거되자 아울러 해남현(海南縣)으로 귀양갔다.
참고문헌
- 『정조실록(正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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