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협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사간원정언, 승지, 김포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화중(和仲)
인물/전통 인물
  • 본관남양[南陽, 지금의 경기도 화성]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병조정랑|김포군수(金浦郡守)
  • 출생 연도1750년(영조 26)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홍갑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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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사간원정언, 승지, 김포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화중(和仲). 홍숙(洪璛)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지중추부사 홍봉조(洪鳳祚)이고, 아버지는 형조판서 홍억(洪檍)이며, 어머니는 이의현(李宜顯)의 딸이다. 홍익(洪榏)에게 입양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92년(정조 1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바로 홍문록(弘文錄: 홍문관의 제1차 인사기록)에 선발되었고, 또 병조정랑을 제수받았다가 강원도 간성(杆城)·양양(襄陽)·고성(高城)의 화재 때문에 위유어사(慰諭御史)로 파견되어 임무를 무사히 마쳤다.

이어 양주암행어사를 거쳐, 이 해 말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에 제수되었다. 이듬해 호서안핵어사(湖西按覈御史), 경기의 교동(喬桐)과 해서(海西)의 연안(延安)·배천(白川) 등지의 암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 왔고, 문관출신의 비변사낭청으로 이름이 높았다.

1794년(정조 18) 명릉(明陵)의 친제시 대축(大祝)의 공으로 가자되었고, 이어 충청도어사 및 호서위유사의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 왔다. 이듬해 정언으로 재직 중 민사선(閔師宣)의 탄핵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1797년(정조 21) 승지로 재직 중 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김포군수(金浦郡守)로 좌천되기도 했다. 순조가 즉위하자 집권한 벽파(僻派)에 의해 내몰린 김이익(金履翼) 등이 제거되자 아울러 해남현(海南縣)으로 귀양갔다.

참고문헌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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