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군택(君澤), 호는 담포(淡圃). 홍영필(洪永弼)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명원(洪命元)이고, 아버지는 관찰사 홍처후(洪處厚)이며, 어머니는 형조판서 정사호(鄭賜湖)의 딸이다.
1660년(현종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82년(숙종 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장령·정언·지평 등을 거쳐 1686년 수찬으로 함경도암행어사로 파견되어 탐관오리를 징계하는 동시에 민정을 살피고 돌아왔다.
이어 교리·이조좌랑을 거쳐, 1688년에 헌납으로 박세채(朴世采)를 변호하다 귀양간 영의정 남구만(南九萬)과 좌의정 여성제(呂聖齊) 등을 구하려고 여섯 차례 계(啓)를 올렸다가 북청판관으로 좌천되었다. 이듬해 사예가 되었으나 기사환국으로 정국이 바뀌자 무안으로 유배되었다.
1694년 갑술옥사로 유배에서 풀려나 인현왕후의 복위도청(復位都廳)에 기용된 뒤 집의를 거쳐, 승지·대사간·대사성 등을 여러 차례에 걸쳐 역임하고 이천부사로 나가 선정을 베풀었다.
이어 이조참판·대사헌 등을 거쳐, 1702년 이조판서가 되었다. 그 뒤 공조판서·판의금부사·호조판서·좌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