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공조판서, 한성부판윤,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모사도감(摹寫都監)에서 도청(都廳)을 잘 수행한 공으로 가자(加資)되었고, 1848년 이조참의에 제수되었다가 이듬해에는 대사성을 역임하였고, 1850년(철종 1)에는 상시(上謚) 때에 예방승지(禮房承旨)로 활약한 공으로 가자(加資)되었다.
그 뒤 충청도관찰사·경상도관찰사로 파견되었다가 곧 이조참판으로 복귀하였다. 1855년(철종 6) 희릉(禧陵) 친제(親祭)시 예방승지(禮房承旨)로 보필한 공으로 가자(加資)되었고, 도승지를 거쳐 예조판서·병조판서, 우참찬(右參贊) 등을 역임한 뒤 1857년(철종 8) 광주부유수(廣州府留守)로 파견되었다.
이듬해 예조판서로 재직 중 남전증건도감(南殿增建都監) 감동(監董)의 공으로 가자되었고, 이어 판의금부사, 공조판서·한성부판윤·형조판서 등을 거쳐 1862년(철종 13) 이조판서에 제수되었다.
참고문헌
- 『순조실록(純祖實錄)』
- 『헌종실록(憲宗實錄)』
- 『철종실록(哲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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