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성립(聖立). 홍감보(洪鑑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선호(洪善浩)이고, 아버지는 생원 홍희명(洪羲命)이며, 어머니는 김이중(金履中)의 딸이다.
1829년(순조 29)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1833년(순조 33) 한권(翰圈)에 선발된 후 이어 시행된 한림소시(翰林召試)에 뽑혔다. 1836년(헌종 2) 도당록(都堂錄) 회권(會圈)에 선발되었고, 이듬해에는 원접사(遠接使)의 문례관(問禮官)으로 임무를 다하였다.
그 뒤 모사도감(摹寫都監)에서 도청(都廳)을 잘 수행한 공으로 가자(加資)되었고, 1848년 이조참의에 제수되었다가 이듬해에는 대사성을 역임하였고, 1850년(철종 1)에는 상시(上謚) 때에 예방승지(禮房承旨)로 활약한 공으로 가자(加資)되었다.
그 뒤 충청도관찰사·경상도관찰사로 파견되었다가 곧 이조참판으로 복귀하였다. 1855년(철종 6) 희릉(禧陵) 친제(親祭)시 예방승지(禮房承旨)로 보필한 공으로 가자(加資)되었고, 도승지를 거쳐 예조판서·병조판서, 우참찬(右參贊) 등을 역임한 뒤 1857년(철종 8) 광주부유수(廣州府留守)로 파견되었다.
이듬해 예조판서로 재직 중 남전증건도감(南殿增建都監) 감동(監董)의 공으로 가자되었고, 이어 판의금부사, 공조판서·한성부판윤·형조판서 등을 거쳐 1862년(철종 13) 이조판서에 제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