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응길(應吉). 호는 치재(耻齋).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낸 홍덕연(洪德演)이며, 어머니는 용인이씨(龍仁李氏)로 이사량(李思良)의 딸이다. 서경덕(徐敬德)·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37년(중종 32)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심경』·『근사록』·『중용』·『대학』에 전심하였다. 또한,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당시 명인들과 강마하고 논란하였다. 노수신(盧守愼)과 허엽(許曄)은 학문하는 중에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서신이나 구두로 물었고, 김안국(金安國)도 홍인우의 학행을 칭찬하였다고 한다.
어버이의 병환으로 의서를 배워 약의 처방을 알았다.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여주의 기천서원(沂川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치재집(致齋集)』 2권과 『관동일록(關東日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