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사간, 정언, 동학교수, 수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05년 예조좌랑·병조좌랑을 거쳐 정언이 되었다. 그런 뒤 잠시 함경도 고시관(考試官)으로 나갔다가 돌아와 다시 정언이 되었다. 이듬해 지평으로 전보되었고, 홍문록(弘文錄: 홍문관의 제학이나 교리를 선발하기 위한 제1차 인사기록)에 올랐다. 또한 영남경차관(嶺南敬差官)으로 다녀오기도 하였다.
1707년 부수찬을 거쳐 수찬에 재임 중, 비가 많이 와서 선릉(先陵)이 붕괴되는 변이 생겨났다. 이에 조정에서 음양가(陰陽家)만을 보내 수리하려 하자, 국왕이 친행(親行)해 능침을 개수할 것을 주장하는 소를 올려 조정에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다.
1708년 함경도암행어사로 파견되어 간리(奸吏)를 다스리고 민정을 살폈다. 그리고 군사시설을 점검해 그 문제점을 적어 올리기도 하였다. 다시 경직으로 돌아와서는 수찬·헌납 등을 역임한 뒤 지제교를 겸하였다.
그 뒤 보덕을 거쳐 1714년에는 사학(四學) 가운데 하나인 중학교수(中學敎授)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사간·정언에 임명되었으며, 이어 동학교수(東學敎授)·수찬 등을 지냈다. 어려서부터 검소한 생활을 몸에 익혀 평생을 근검하게 살았으며, 형제들 모두가 오랫동안 관직에 머물러 주위에서 부러워하였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성호문집(星湖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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