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진도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판의금부사, 한성부판윤,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자유(子由)
  • 청회(聽檜)
  • 시호충목(忠穆)
인물/전통 인물
  • 본관남양(南陽, 지금의 경기도 화성)
  • 사망 연도1649년(인조 27)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판의금부사|한성부판윤|판중추부사
  • 출생 연도1584년(선조 1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원근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판의금부사, 한성부판윤,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자유(子由), 호는 청회(聽檜). 아버지는 동지돈녕부사 홍희(洪喜)이며, 어머니는 능안부원로 구사맹(具思孟)의 딸이다. 아버지 희가 인조의 외조부인 구사맹(具思孟)의 사위여서 인조와 이종사촌 형제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3년(광해군 5) 처음 별제(別提)를 거쳐 목천현감이 되고 의금부로 전임되었다. 광해군의 정치가 문란해짐을 보고 나라를 바로잡기 위하여 구굉(具宏)·신경진(申景禛) 등과 모의하니 아우 홍진문(洪振文)도 이에 참여하였다.

광해군이 능창군(綾昌君)을 살해하자 능창군의 형인 능양군(綾陽君: 뒤의 인조)이 화를 입을까 두려워하여 집을 반환하자, 그의 집을 능양군에게 헌납하였다.

이들을 의심한 광해군이 능양군의 아버지 원종(元宗)이 죽었을 때 조객(弔客)들을 주시하였으나, 그는 두려움없이 끝까지 장례를 치렀다. 1623년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그 공으로 공조좌랑에 특진되고, 이듬해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에 책록되어 남양군(南陽君)에 봉하여졌다.

1625년 부평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을 거쳐, 1631년 공주목사가 되고, 선정을 베풀어 가의대부에 승진하고, 한성부우윤을 역임한 뒤 남양부사가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남한산성으로 호종하였고, 이듬해 자헌대부에 올랐다.

1644년 모친상을 마친 뒤 도총관, 지돈녕부사 겸 지의금부사를 거쳐, 이듬해 사은 겸 주청부사(謝恩兼奏請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35년 병자호란 때 신경진 등과 화의(和議)를 주장하였으며, 그 뒤 판의금부사·한성부판윤·판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영의정에 추증되고, 남양부원군에 추봉되었다. 시호는 충목(忠穆)이다.

참고문헌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병무록(丙戊錄)』

  • - 『필원잡기(筆苑雜記)』

  • - 『조야기문(朝野記聞)』

  • - 『연평일기(延平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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