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판의금부사, 한성부판윤,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광해군이 능창군(綾昌君)을 살해하자 능창군의 형인 능양군(綾陽君: 뒤의 인조)이 화를 입을까 두려워하여 집을 반환하자, 그의 집을 능양군에게 헌납하였다.
이들을 의심한 광해군이 능양군의 아버지 원종(元宗)이 죽었을 때 조객(弔客)들을 주시하였으나, 그는 두려움없이 끝까지 장례를 치렀다. 1623년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그 공으로 공조좌랑에 특진되고, 이듬해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에 책록되어 남양군(南陽君)에 봉하여졌다.
1625년 부평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을 거쳐, 1631년 공주목사가 되고, 선정을 베풀어 가의대부에 승진하고, 한성부우윤을 역임한 뒤 남양부사가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남한산성으로 호종하였고, 이듬해 자헌대부에 올랐다.
1644년 모친상을 마친 뒤 도총관, 지돈녕부사 겸 지의금부사를 거쳐, 이듬해 사은 겸 주청부사(謝恩兼奏請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35년 병자호란 때 신경진 등과 화의(和議)를 주장하였으며, 그 뒤 판의금부사·한성부판윤·판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영의정에 추증되고, 남양부원군에 추봉되었다. 시호는 충목(忠穆)이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병무록(丙戊錄)』
- 『필원잡기(筆苑雜記)』
- 『조야기문(朝野記聞)』
- 『연평일기(延平日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