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황해도관찰사, 첨지중추부사, 예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48년 복직되어 정언·수찬 등을 역임하고, 1650년(효종 1) 응교로 춘추관편수관이 되어 『인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그 해 지평이 되어 영의정 김자점(金自點)을 탄핵하였다. 또한 교리가 되어서는 당쟁(黨爭)의 무해(無害)함을 진술하다가 삭직되었다.
그러나 곧 배천군수(白川郡守)로 기용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1652년 보덕으로 승진되었고, 사인을 지냈다. 이듬 해 교리가 되어 사노(私奴)로서 충군(充軍)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는 내용의 소를 올렸으나 시행되지 않았다.
한편, 효종이 옛 성인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뜻을 알고자 『서전(書傳)』에 쓰인 기형(璣衡: 천문을 관측하는 기계)을 만들어 바칠 것을 명하자, 이것을 만들어 올려 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로 해서 직강·수찬이 되었으나 곧 삭직되었다. 1654년 다시 보덕에 임명되어 직강·교리를 지냈다. 1656년 금성군수(錦城郡守), 1658년 응교·사간·사인, 이듬 해 수찬·사간·사예·종부시정 등을 지냈다.
효종이 승하하자 사인 겸 빈전도감도청이 되고, 이어 교리 겸 한학교수를 거쳐 통정대부로 승진, 동부승지가 되었다. 이듬 해 형조참의·황해도관찰사를 거쳐, 1663년 첨지중추부사·예조참의 등을 지냈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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