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희남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숭록대부의 위계에 올라 지중추부사를 역임한 역관.
이칭
  • 자열, 子悅
인물/전통 인물
  • 본관남양(南陽, 지금의 경기도 화성)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역관
  • 출생 연도1595년(선조 28)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해순 (성균관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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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숭록대부의 위계에 올라 지중추부사를 역임한 역관.

개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자열(子悅). 임진왜란 이후 대일 관계에 있어서 난관에 봉착하면 반드시 일본에 파견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년 동안에 3계급이나 특진하여 나이 50도 못 되어 숭록대부(崇祿大夫)의 위계에 올라 1644년(인조 22)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일본에 여섯 번, 대마도(對馬島)에 여러 차례 다녀왔고, 명나라에도 두번 사신으로 다녀왔다.

1649년 인조의 국상(國喪) 때 일본의 조제사(弔祭使)가 서울로 와서 진향(進香)하려고 하자, 이 문제로 부산에 내려가서 그 절차를 정하였으며, 그것이 그 뒤 일본사신의 전례가 되었다.

1657년(효종 8) 영의정 정태화(鄭太和)에게 일본에서 본 유황(硫黃)의 위용을 말하여 왕에게 그 필요성을 진언하게 하고, 1659년 문위사(問慰使)를 수행하여 일본에 가서 유황의 산화법(酸化法)을 배워와 우리나라에 전파시켰다. 1659년(현종 즉위년)에도 대마도에 다녀왔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효종실록(孝宗實錄)』

  • - 『통문관지(通文館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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