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빈곤 문제는 절대적 빈곤(Absolute Poverty)에서 상대적 빈곤(Relative Poverty)으로 그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그렇다고 절대 빈곤 또는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의 결핍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생존에 필요한 식료품과 물 그리고 최소한의 의료 서비스를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절대 빈곤 인구는 빠르게 감소해 왔으며, 빠르게 증가하는 불평등 문제가 새로운 사회 갈등의 원인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역사적으로 빈곤 개념은 더 높은 빈곤선에 주목하던 단계에서, 다원적이고 역동적인 문제에 천착하는 다차원적 개념으로 발전하여 왔다. 이는 절대적 빈곤에서 상대적 빈곤으로 그리고 다차원적 빈곤 개념으로의 축적과 발전이 이루어져 왔음을 의미한다. 이는 빈곤 개념이 소득 빈곤에서 종합적인 기초 생활(Living Standard)을 강조하는 경향으로 변화해 왔음을 의미한다.
먼저 절대적 빈곤이란 ‘효율적인 육체적 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식료품도 소비하지 못하는 상태’를 지칭한다. 빈곤을 화폐적 기준으로 바꾸어 표현한 인물은 영국의 라운트리(B. S. Rowntree)였다. 그는 1901년 절대적 빈곤을 “육체적 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필수품을 구입하는데 필요한 소득수준”으로 규정하였다. 이후 미국의 오션스키(Mollie Orshansky)는 엥겔계수를 활용하여 3인 이상 가구의 최소 식품비를 계산하고, 그것에 3을 곱하여 빈곤선을 계산하는 방법을 제안하였다. ‘절대’ 빈곤선이란 매우 낮은 수준의 빈곤선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 개념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식료품비 산정을 위해 품목 및 가격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연구자의 자의성이 개입할 소지가 크고, 장기간 사용하는 경우 현실과 동떨어진 기준선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어 상대적 빈곤은 “그 사회의 평균적인 소득 수준과 비교하여 낮은 소득으로 생활하는 상태”를 지칭한다. 그 사회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빈곤선 또한 높아져, 경제사회적 변화를 반영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상대적 빈곤 개념이 결핍 외에도 상대적 격차 문제에 주목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개념을 정립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했던 인물은 영국의 타운젠트(Peter Townsend)였다. 빈곤선을 중위소득 또는 평균소득의 몇 %로 설정할 것인가와 관련해서 국제적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연구자들 또한 중위 소득 또는 평균 소득의 40∼80%까지 다양한 기준선을 제시하고 있다. 참고로 유럽통계청(Eurostat)은 빈곤선을 중위 소득의 60%로 설정하고 있지만, 프랑스 통계청(INSEE)은 중위 소득의 50%를 빈곤선으로 설정하고 있다.
‘주관적 빈곤(Subjective Poverty)’개념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 개념은 위의 객관적 빈곤선과 달리, “빈곤(인식)의 주관성”에 주목한다. 이 분석 방법은 객관적으로 부여된 빈곤 지위가 아니라 각 개인이 스스로 느끼는 상태에 주목한다. 각종 설문 조사에서 자신이 속한 가구의 객관적인 소득 지위는 중산층이지만, 자신을 빈곤층으로 인식하는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동일한 소득 수준이라도 해당 가구의 욕구와 선택에 따라 소비에 크게 부족함을 느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방법론적으로 여전히 많은 한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빈곤 현상의 ‘다차원성(multi-dimensionality)’을 전제로 다양한 개별 욕구의 관계와 재구성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은 연구와 정책 차원에서 매우 큰 잠재력을 갖는다.
빈곤 문제와 관련해서 객관적인 측정의 문제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관심사였다. 그리고 최근 빈곤의 측정은 크게 두 가지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첫째, ‘정태적(static)’ 빈곤 개념에서 ‘시계열적(time-series)’ 빈곤 개념으로의 이행이다. 이는 최근 고용 불안이 확산되며, 빈곤과 탈빈곤을 되풀이 하는 반복 빈곤층이 증가하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둘째, ‘현재적(present)’ 빈곤 개념에서 ‘잠재적(potential)’ 빈곤 개념으로의 이행이다. 이는 어떠한 요인이 어떠한 집단의 빈곤 위험을 증가시키며,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치가 필요한지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빈곤층은 생활능력이 없는 노인이나 장애인, 아동 그리고 여성에게 집중되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국가에서 노인 빈곤율이나 장애인 빈곤율은 전체 빈곤율에 비해 높은 수준으로 나타내고 있다. 예외적인 경우는 노후소득보장제도나 장애인소득보장제도가 발달한 서구복지국가들이다. 하지만 최근 세계 각국이 주목하는 문제는 ‘일을 하더라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집단’, 즉 ‘근로빈곤층(Working Poor)’문제이다. 노인이나 장애인 빈곤층 발생이 전통적인 사적안전망의 붕괴와 이를 대체할 공적 사회보장제도의 저발전에 기인한다면, 근로 빈곤층은 장기간의 저성장, 노동시장의 불안정성과 좋은 일자리의 감소에 기인하는 것이다. 특히 근로 빈곤층의 증가는 납세 인구의 감소와 사회보장 비용의 증가라는 관점에서 정부 재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그 밖에 빈곤 문제가 이민 또는 국제적 노동 이동 문제와 맞물려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구는 이미 1960년대부터 소수인종, 특히 이민자를 중심으로 빈곤 문제가 심각한 수준을 나타내 왔다. 그 중에서도 미국은 인종에 따른 빈곤율이 매우 큰 격차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점에서 이 문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양상은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유럽연합은 회원국 확대에 따라 기존 소수인종의 실업과 빈곤문제에 동유럽 이민자들의 문제가 겹쳐지는 문제를 경험하고 있고, 아시아 신흥산업국 또한 외국노동인력의 유입과 잔존에 따라 이들의 실업과 빈곤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높은 선진국이라고 해서 빈곤문제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OECD가 2008년 발표한 보고서, Growing Unequal? Income Distribution and Poverty in OECD Countries에 따르면,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서구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상대빈곤율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절대 빈곤 문제는 저발전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이다. 2008년 세계은행(World Bank)은 국제 빈곤선을 1일 1.25달러(미국달러)로 고정하여, 저발전국과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세계빈곤율(Global Poverty rate)을 추정하였다. 이는 빈곤선을 기존의 1일 1달러보다 상향 조정한 것이었다. 이 빈곤선을 적용하면, 1981년∼2005년 세계 빈곤율은 52.2%에서 25.7%로 약 절반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같은 기간 세계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였음을 감안하더라도, 세계의 빈곤층은 1억 9000만 명에서 1억 4천만 명으로 감소한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1981년 세계 빈곤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아시아국가에서의 빈곤율 감소에 따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아시아, 중남미, 북아프리카지역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빈곤율 감소가 나타났지만, 중남부 아프리카국가의 빈곤율은 1981년 이후 거의 감소하지 않았다.
1981 | 1984 | 1987 | 1990 | 1993 | 1996 | 1999 | 2002 | 20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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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 태평양지역 | 78.8 | 67 | 54.4 | 56 | 51.2 | 37.1 | 35.6 | 29.6 | 17.9 |
그 중 중국 | 84 | 69.4 | 54 | 60.2 | 53.7 | 36.4 | 35.6 | 28.4 | 15.9 |
동중부 유럽 | 1.6 | 1.2 | 1 | 1.5 | 3.8 | 4.5 | 5.4 | 5.6 | 5 |
중남미 / 카리브연안 | 12.3 | 13.9 | 12.4 | 10.7 | 10.8 | 11.5 | 11.5 | 10.1 | 8.2 |
중동/북아프리카 | 8.6 | 6.8 | 6.9 | 5.4 | 5.2 | 5.3 | 5.8 | 4.7 | 4.6 |
남아시아 | 60.3 | 55.6 | 54.2 | 51.3 | 46 | 46.8 | 44.1 | 43.8 | 40.4 |
그 중 인도 | 59.8 | 55.5 | 53.6 | 51.3 | 49.4 | 46.6 | 44.8 | 43.9 | 41.6 |
중남부 아프리카 | 50.8 | 55 | 53.4 | 54.9 | 54.8 | 57.5 | 56.4 | 53 | 50.4 |
전체 | 52.2 | 47.1 | 41.8 | 41.7 | 38.9 | 34.7 | 33.7 | 31.1 | 25.7 |
〈표 1〉 세계빈곤율의 지역별 분포와 추이 | |||||||||
*주: 빈곤선은 1일 1.25달러(미국달러)이며, 표의 수치는 각 지역별 빈곤율(%) *자료: 2008 World Development Indicators - Poverty data (World Bank, 2008) |
우리 사회에서 절대 빈곤율은 1980년대 이후 빠른 속도로 감소하여 왔다. 그것은 최저생계비를 기준선으로 하던, 다른 절대 빈곤선을 활용하던지 급격히 감소하여 왔음을 의미한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빈곤통계연보, 각 연도). 하지만 1991년부터 2009년까지의 상대빈곤율 추이를 보면, 우리 사회의 빈곤 문제가 절대적 박탈의 문제에서 상대적 불평등의 문제로 변화해 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빈곤율은 1990년대 후반 이후 큰 폭으로 증가한 이후,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는 1997년 말 외환위기와 2003년 신용 대란이라는 두 사건이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적용소득과 빈곤선을 차별화하여 2009년 빈곤율을 추정하면 아래 표와 같다. 참고로 이 자료는 농어가를 제외한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하는 수치이다. 먼저 가처분소득을 대상으로 중위 50%를 빈곤선으로 우리나라의 빈곤율을 추정하면, 빈곤 가구율은 22.7%, 빈곤율은 16.6%로 추정된다. 인구로 환산하면 빈곤층 규모는 807만 명에 해당되는 규모이다. 아래 표는 단순히 빈곤층 규모를 보여주는 것 외에도 정책적 개입이 빈곤율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고 있다. 아래 표에 따르면 복지 지출이 빈곤 인구를 약 1%가량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나고, 조세 및 사회보장세가 빈곤 인구를 약 0.5%가량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위 40 기준 | 중위 50 기준 | 중위 60 기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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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소득 | 가구 | 19.6 | 24.4 | 29.6 |
개인 | 13.7 | 18.1 | 23.2 | |
경상소득 | 가구 | 18.1 | 23.4 | 29.1 |
개인 | 12.4 | 17.1 | 22.5 | |
가처분소득 | 가구 | 17.5 | 22.7 | 28.3 |
개인 | 12.1 | 16.6 | 22.0 | |
〈표 2〉 2009년 소득유형별 상대빈곤율(가구 및 개인) (단위: %) | ||||
*자료: 통계청, 전국가계조사, 2009년 원자료 |
한국 빈곤 문제를 외국과 비교해 보면, 현재 우리 사회의 빈곤 문제가 어느 정도로 심각하며, 어떤 국가와 유사한 특징을 보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와 유사하거나 높은 수준의 빈곤율을 나타내는 국가는 멕시코나 터키, 미국, 일본 등이다. 이들 국가들은 1인당 GDP와 관련 없이, 사회보장제도가 발전하지 못한 국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빈곤 개념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조차 충족시키지 못하는 인구의 규모와 실태를 측정하는데 초점을 둔 개념이라는 점에서 해당 국가의 사회정책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빈곤 정책이 발달하였다고 해당 국가의 복지 정책 또는 사회정책이 발달한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빈곤층의 규모는 그 나라의 소득 보장과 주거 보장, 의료 보장, 교육 보장 등 각종 사회보장정책이 어느 정도 발달하였는지를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권(Social Rights)’ 보장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