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南陽) 사람으로 첨의평리(僉議評理) 홍탁(洪鐸)의 딸이다.
충혜왕은 경상도 진변사(鎭邊使)로 있는 홍탁의 딸이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홍탁에게 의복과 술을 주고 궁중으로 맞아들이지도 않은 채 1342년(충혜왕 복위 3) 딸을 화비로 봉하였다.
재상 윤침(尹忱)의 집에 두어 왕래하기 편리하도록 하였으나 며칠 지나지 않아서 사랑이 끊어졌다. 왕비의 아버지 홍탁은 고려가 몽고군과 장기항전할 때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몽고군에 투항하였던 홍복원(洪福源)의 아우 홍백수(洪百壽)의 손자이다.
고려가 몽고에 항복하고 홍복원이 원나라의 동경총관 되어 원나라와 고려 사이에서 부원활동을 함에 따라, 홍백수와 그 후손들의 고려 내에서의 위치도 자연 높아지지 않을 수 없었다.
원 반역자의 후손이 고려의 왕비로 될 수 있었던 점에서 당시 고려왕실의 부마국으로서의 성격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사례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