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8칸, 측면 1칸. 1976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근래에 담장을 설치한 이 열녀문은 김정희선생고택(충청남도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 유적지 안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에는 홍문 외에 화순옹주와 김한신(金漢藎)의 합장묘, 김정희묘 · 김정희고택이 있고,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송이 있다.
이 열녀문의 주인공인 화순옹주는 영조의 둘째딸로 당시 영의정 김흥경(金興慶)의 아들인 한신과 혼인하였으나, 38세의 나이로 한신이 죽자 식음을 전폐하고 따라 죽었다.
영조는 화순옹주의 정절을 기리면서도 부왕의 뜻을 저버렸다 하여 정려를 내리지 않았으며, 뒤에 정조가 내렸다. 홍문은 묘막터 정문 위에 “烈女綏祿大夫月城尉兼五衛都摠府都摠管贈諡貞孝公金漢藎配和順翁主之門 上之七年癸卯二月十二日 特命旌閭(열녀 수록대부 월성위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 증시 정효공 김한신 배 화순옹주지문 상지7년 계묘 2월12일 특명정려)”라고 판각되었다. 묘막터는 53칸이었다고 하나 현재는 불타 없어지고 주초(柱礎)만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