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유의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전기에, 중추사, 참지정사 이부상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042년(정종 8)
주요 관직
선휘판관(宣徽判官)
관련 사건
김치양(金致陽)의 난
목차
정의
고려 전기에, 중추사, 참지정사 이부상서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훈신(勳臣)가문출신으로 목종 때 김치양(金致陽)이 천추태후(千秋太后)와 사통하여 얻은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는 음모를 꾸미자, 이를 막기 위하여 선휘판관(宣徽判官)으로서 채충순(蔡忠順)·최항(崔沆) 등의 천거를 받아 낭장 문연(文演) 등과 함께 삼각산(三角山) 신혈사(神穴寺)에 가서 대량원군 왕순(大良院君 王詢: 현종)을 맞아들여 즉위하게 하였다.

현종이 즉위하자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에 제수되고, 이어 이부시랑·내사사인(內史舍人)을 역임하였다. 1014년(현종 5) 중추원일직원(中樞院日直員)으로 중추원사(中樞院使) 장연우(張延祐)와 함께 왕에게 건의하여 경군(京軍)의 영업전(永業田)을 거두어 관리들의 봉급에 충당하였다가 상장군 최질·김훈(金訓) 등에 의하여 유배되었다.

1016년 김훈 등이 사형되자 급사중(給事中)에 기용되었고, 1026년에는 어사대부(御史大夫)에 올라 참지정사(參知政事) 왕가도(王可道)와 함께 개경(開京)에 나성(羅城)을 쌓았으며, 1031년(덕종 즉위년) 중추사(中樞使)가 되었다.

이듬해 참지정사 이부상서(參知政事吏部尙書), 1034년 내사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內史侍郎同內史門下平章事), 1036년(정종 2) 문하시랑이 된 뒤에 치사(致仕)하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고려목종 12년의 정변에 대한 일고찰: 목종대의 사경발문과 관련하여」(김당택, 『한국학보』18,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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