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유의

  • 역사
  • 인물
  • 고려 전기
고려 전기에, 중추사, 참지정사 이부상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김치양(金致陽)의 난
  • 사망 연도1042년(정종 8)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선휘판관(宣徽判官)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오성 (세종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 전기에, 중추사, 참지정사 이부상서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훈신(勳臣)가문출신으로 목종 때 김치양(金致陽)이 천추태후(千秋太后)와 사통하여 얻은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는 음모를 꾸미자, 이를 막기 위하여 선휘판관(宣徽判官)으로서 채충순(蔡忠順)·최항(崔沆) 등의 천거를 받아 낭장 문연(文演) 등과 함께 삼각산(三角山) 신혈사(神穴寺)에 가서 대량원군 왕순(大良院君 王詢: 현종)을 맞아들여 즉위하게 하였다.

현종이 즉위하자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에 제수되고, 이어 이부시랑·내사사인(內史舍人)을 역임하였다. 1014년(현종 5) 중추원일직원(中樞院日直員)으로 중추원사(中樞院使) 장연우(張延祐)와 함께 왕에게 건의하여 경군(京軍)의 영업전(永業田)을 거두어 관리들의 봉급에 충당하였다가 상장군 최질·김훈(金訓) 등에 의하여 유배되었다.

1016년 김훈 등이 사형되자 급사중(給事中)에 기용되었고, 1026년에는 어사대부(御史大夫)에 올라 참지정사(參知政事) 왕가도(王可道)와 함께 개경(開京)에 나성(羅城)을 쌓았으며, 1031년(덕종 즉위년) 중추사(中樞使)가 되었다.

이듬해 참지정사 이부상서(參知政事吏部尙書), 1034년 내사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內史侍郎同內史門下平章事), 1036년(정종 2) 문하시랑이 된 뒤에 치사(致仕)하였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 「고려목종 12년의 정변에 대한 일고찰: 목종대의 사경발문과 관련하여」(김당택, 『한국학보』18, 1980)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