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초산 출신.
일찍이 만주로 망명하여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에 가입, 항일투쟁하다가 동부(同府) 제4중대에서 유격대를 조직하므로 참사(參士)를 자원, 편입하였다.
대원들과 같이 봉천(奉天) 일대를 근거로 군자금 모집, 일본 행정기관 습격, 친일파 밀정배들을 사살·숙청하는 등 독립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다가 1929년 7월 일본경찰에 붙잡혀 평양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26세로 순국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