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전기 제2대 혜종의 제2 왕비.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리고 이미 태조 자신과 중첩된 혼인관계를 맺고 있는 왕규의 딸을 제2비로 삼았는데, 왕규의 학문적 능력과 군사적 지원으로 혜종의 왕위가 안정되기를 기대하였을 것이다. 실제로 왕규는 태조가 승하할 때 태자를 잘 받들어 나라의 정사를 처결하라는 태조의 유훈을 직접 받은 근신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태조가 승하하고 혜종이 즉위한 뒤 자신의 외손자인 광주원군(廣州院君)을 왕위에 추대하기 위하여 혜종과 대립적인 위치에 서게 되었고, 혜종이 승하한 뒤 태조의 셋째아들 정종과 왕위다툼을 벌이다가 반역을 꾀하였다는 죄명으로 처형되었다.
그 와중에서 왕규의 일당 수백 명이 같이 죽임을 당하였는데, 왕규의 딸인 후광주원부인이 무사하였을지는 의문이다. 생존하여 있었다고 하더라도 반역자의 딸은 왕실에서 축출되는 예가 많으므로 왕비의 자리에서 밀려났을 것으로 짐작된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시대의 후비』(정용숙, 민음사, 1992)
- 「고려혜종조 왕위계승전의 신해석」(강희웅, 『한국학보』7, 1977)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