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주(陜州: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 사람이며 대광(大匡) 이원(李元)의 딸이다.
부인의 이름에 붙은 대량은 신라 말·고려 초의 합천지방 이름이므로 출신지명을 따서 왕비의 이름으로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름자 첫머리에 후(後)가 붙어 있으며, 이는 선(先)·전(前)에 대칭되어 사용되는 용어이므로 태조 후비 가운데 그에 합당한 인물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선(전)대량원부인의 이름을 가진 태조 후비는 보이지 않는다.
비록 이름은 다르더라도 대량지방과 관계있는 인물을 찾아보면, 태조 제5비 신성왕후 김씨(神聖王后金氏)가 있다. 신성왕후에 대해서는 대위(大尉) 이정언(李正言)의 딸이라는 『삼국유사』보주와 신라 경순왕의 종매라는 『삼국사기』 설의 두 설이 있다.
그렇지만, 아버지 김억렴(金億廉)이 대량주 태수를 역임한 일이 있으므로 후설의 경우에도 대량지방과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대량원부인은 태조비 신성왕후와 비견되어 후대량원부인이라고 불렸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대량지방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연결하는 교통상의 관문이며 후백제와의 전투에서 해인사 승군의 도움으로 전세를 만회한 접전지였다. 이러한 전투 요충지의 지방 세력가의 딸을 태조는 자신의 후비로 맞아들였던 것이다. 태조와의 사이에 자녀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