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洪州: 지금의 충청남도 홍성) 사람이며 삼중대광(三重大匡) 홍규(洪規)의 딸이다.
홍규의 활약상을 알 수는 없지만, 홍주 지방은 934년(태조 17) 후백제 견훤(甄萱)과의 싸움에서 전취한 지점이다.
이로 인하여 공주 이북의 30여 성이 고려에 자진 내항할 정도로 후백제와의 겨룸에서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이곳은 또한 충청도에서 서해로 나가는 출구로서 중국사신의 접대와 영송(迎送)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였다.
이처럼 태조는 중요지점의 지방세력가의 딸을 후비로 맞아들였던 것이다. 태조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아들은 태자 왕직(王稷)인데 후손이 없었고, 실명(失名)의 공주는 태조의 제3비 신명왕후(神明王后) 소생 태자 왕태(王泰)에게 출가하여 이복남매간의 근친혼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신명왕후의 둘째아들인 정종, 셋째아들인 광종이 차례로 왕위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맏아들로 기록된 태자 왕태는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으로 보아 아마 일찍 죽었을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