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평(坡平) 사람으로 찬성사(贊成事) 윤계종(尹繼宗)의 딸이며, 충정왕의 어머니이다.
파평 윤씨는 예종 때 윤관(尹瓘)의 활동에 힘입어 성장하고 고려 후기에도 재상지종(宰相之宗)에 포함되는 명문가의 하나이다.
충혜왕이 죽은 뒤 덕녕공주(德寧公主) 소생 왕자인 충목왕이 즉위하였으나 재위 4년 만에 12세의 나이로 죽자, 윤씨 일족은 희비가 낳은 충혜왕의 서자 왕저를 왕으로 추대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충정왕 즉위 후 희비에게는 경순부(敬順府)를 설치하고 승(丞)·주부(注簿) 각 1인과 사인(舍人) 2인을 두어 지위가 격상되었다.
그러나 충정왕이 재위 3년 만에 원나라의 압력으로 왕위에서 물러나 강화도에 안치되어 있을 때는 식사공급도 충분하지 못하고 모자간의 내왕조차 끊어지는 곤경을 치렀으며, 공민왕에게 청하여 겨우 며칠간 아들을 만나볼 수 있을 정도로 행동 전반에 많은 규제를 받았다.
공양왕 때 와서 예관(禮官)의 건의를 받아들여 왕후의 예에 준하여 기제(忌祭)와 진전제(眞殿祭)를 거행하도록 하는 조처가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