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구 ()

송파구청
송파구청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서울특별시의 동남쪽에 위치한 구.
정의
서울특별시의 동남쪽에 위치한 구.
개관

동쪽은 강동구와 경기도 하남시, 남쪽은 경기도 성남시, 서쪽은 강남구, 북쪽은 한강 건너 광진구와 접해 있다. 위치는 동경 127°04'~127°09', 북위 37°27'~37°32'이다. 면적은 33.88㎢이고, 인구는 66만 302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6개 행정동(13개 법정동)이 있다. 구청은 서울특별시 송파구 신천동에 있다.

자연환경

한강의 침식 및 퇴적작용을 받았으며, 한강으로 유입되는 성내천과 탄천 일대에 충적층이 발달하였고, 남쪽의 청량산에서 뻗은 천마산과 작은 구릉이 구의 중앙을 지나며 언덕길을 형성하였다. 산지를 제외하고 대부분 고도 50m 이하의 저지대로 이루어진 일종의 충적평야 지형을 나타내고 있다. 기반암의 대부분은 선캄브리아기에 속하는 경기편마암복합체와 신생대 제4기에 형성된 홍적층과 충적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쪽에 한강본류, 동쪽에 탄천, 서쪽에 탄천이 흐르며, 탄천과 성내천 사이에는 잠실과 그 배후지역이 연결되어 있고 그 밖에는 주택지역이 발달하였다. 강의 연안에 비교적 넓은 범람원이 발달해 근교농업지역으로 이용되었는데, 한강과 접해 있어 침수지역이 넓은 편이다. 성내천은 청량산에서 발원하였는데, 건천으로 있다가 지하철 5호선 개발로 지하수를 이용하여 친환경 자연하천으로 조성하여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탄천은 용인 법화산에서 발원하여 성남시를 지나 한강에 유입되기 직전에 양재천과 합류한다. 산세를 보면 동쪽에 한남정맥의 끝줄기인 청량산(남한산성공원)에서 뻗은 천마산 줄기가 있고, 성내천 서쪽으로 투구봉·오금공원·개롱공원·망월봉 등으로 이루어진 작은 구릉이 연결되어 도시구조의 배경이 되었다.

기후는 대륙성 기후의 특징을 바탕으로 한강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도시기후를 나타내고 있으며, 연평균 기온은 13.3℃, 1월 평균기온은 -1.5℃, 8월 평균기온은 26·1℃, 연 강수량은 1499.1㎜이다.

역사

송파 지역은 우리 조상들이 선사시대부터 생활터전으로 자리 잡은 곳이었다. 가락동 지역은 구석기 유물 출토지로 알려져 있으며,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가락동 유적과 문정동 유적이 있어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송파구를 포함한 한강 유역을 무대로 최초의 정치세력이 등장한 것은 진국(辰國)과 삼한사회의 마한(馬韓), 그리고 초기 백제였다. 서기전 1세기 말 백제국이 마한을 정복하고 초기 고대국가인 백제(百濟)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한강 유역의 경제성을 이용하여 보다 많은 생산 활동과 인구 증가를 이루었고 보다 큰 정치집단을 형성하여 4세기 중엽 근초고왕 때에 전성기를 이루었다.

475년 한강 유역은 고구려의 통치 하에 들어갔다. 553년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한 이래 신라 삼국통일의 전진기지가 되었다. 신라는 전국에 9주를 설치했고 강남구를 포함한 서울 지방은 한산주(漢山州)에 편입되었다. 한산주는 757년(경덕왕 16) 지금의 서울 지방에 한양군(漢陽郡)을 설치하면서 한주(漢州)로 개칭되었다. 후삼국시대에는 왕건의 활동으로 태봉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특히 백제의 도읍지와 관련하여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풍납동과 방이동에 위치하며, 백제 한성시대의 왕실과 도성민의 묘역으로서 석촌동 백제 초기적석총과 방이동 백제고분군이 자리하고 있다.

918년 왕건이 국왕에 추대되어 고려왕조를 개창함에 따라 한양군(漢陽郡)은 고려에 편입되었으며, 940년(태조 23) 전국의 행정구역을 재편성하고 주군현(州郡縣)를 개칭함에 따라 한양군은 양주(楊州)로, 한주는 광주(廣州)로 편제되었다. 983년(성종 2) 12목(牧)에 지방관이 처음 파견될 때 광주도 이에 포함되었으며, 995년(성종 14)에는 절도사를 파견하면서 봉국군(奉國軍)이라 불렸다. 1310년(충선왕 2) 8월에는 광주목(廣州牧)이 지주사(知州事)로 격하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 다시 목으로 승격되었다. 1231년과 1232년의 몽골군 1·2차 침입에 광주부사 이세화(李世華)를 중심으로 군민이 단결하여 광주산성(남한산성)에서 막아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고려 말에 판전교시사 조운흘(趙云仡)은 관직에서 물러나 고원성(古垣城, 몽촌토성)에서 말년을 보내기도 하였다.

송파구 지역을 관할하고 있던 광주는 조선 중기까지는 23개 면 113개 리를 포용하는 경기도 내의 가장 큰 고을이었다. 이곳은 조선시대 말까지 군사기지로 주목을 받았으며, 남한산성(南漢山城)은 전란 때마다 격전지 방어성이 되었다.

현재의 송파구는 광주부의 중대면 일대와 고양주면 일부, 구천면 일부에 해당되었다. 1759년(영조 35)의 『호구장부』와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보면, 중대면의 거여미동·오금리·장지리·문정동·가락동·송파동·삼전도리·이동 등 8개 리, 고양주면의 잠실리와 새내, 구천면의 바람드리가 있었다.

한편 송파 지역은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하는 길목이었고, 청나라 군사들이 주둔한 전장이 되었으며, 청태종에게 항복한 장소로 삼전도비와 진터벌의 일화가 전하고 있다. 또한 잠실동은 조선시대 국가에서 경영하던 동잠실이 있던 곳으로, 잠실도회가 설치되어 양잠을 장려하였다. 조선 후기 송파나루를 중심으로 송파장이 개설되어 도성에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며, 사상도고(私商都賈)·경강상인(京江商人)들의 활동무대로 유명하였다. 아울러 이곳에서 연희되던 송파산대놀이·송파 다리밟기·송파백중놀이 등은 오늘날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또 삼전도와 송파진 등의 나루터는 경강 3대 나루 가운데 하나로 수상교통 뿐만 아니라 삼남지방으로 이어지는 주요 교통로가 되었고, 신천참·송파발소·송파점 등 참점(站店)이 운영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고원강촌에서는 조운흘에 이어 서거정이 한적한 생활을 즐겼으며, 숙종 때 우의정을 지낸 김구(金構) 등 청풍 김씨 일가의 생활근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1914년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광주군은 16개 면, 183개 리로 개편되었는데, 중대면은 장지리·거여리·마천리·오금리·가락리·이리·송파리·석촌리·삼전리·방이리·문정리 등 11개 리로 형성되었으며, 구천면 풍납리, 뚝도면 잠실리·신천리 등이 송파구지역에 해당되었다.

일제강점기에도 송파장시는 공설시장으로 명맥을 이어갔으며, 장이 서는 5·10일에는 경기도내 상인들이 모여들었고 특히 우시장은 큰 성황을 이루었다. 그러나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장터가 흔적 없이 유실되었고 1936년 광진교가 건설되어 천호동지역에 장시가 서게 되었다. 1925년의 대홍수는 풍납·신천·잠실·송파·가락동 일대를 휩쓸고 지나갔으며, 이를 기억하기 위해 을축년대홍수기념비가 세워졌다.

잠실·신천동 지역은 고양군 뚝도면, 풍납동은 광주군 구천면, 그 외 대부분 지역은 광주군 중대면(中垈面)이었는데, 1963년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성동구에 편입되어 송파출장소와 뚝도출장소 관할에 있다가, 1975년 강남구가 분리, 신설되면서 강남구에 속하였다. 1979년 강남구에서 분리된 강동구에 속해 있다가 1988년 송파구로 분리, 신설되었다.

서울에 편입되기 전에는 근교농업지역으로 채소를 주로 재배하였다. 1971년 광주대단지(현 성남시) 개발에 따라 잠실대교·송파대로 건설 등이 추진되면서 그 중간 거점으로 송파 지역 개발이 촉진되었다. 따라서 잠실지구 공유수면매립공사가 진행되어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조성되었고, 하중도였던 잠실이 육속화(陸續化)되었다. 이어 세계 최초의 도시설계에 의한 구획정리인 잠실지구종합개발계획이 추진되어 아시아경기대회와 올림픽경기를 개최할 수 있는 종합운동장과 체육공원이 조성되어 ‘한강의 기적’을 가시화하였다.

지하철 2호선을 연결하고, 한강제방도로를 축조하였으며, 한강종합개발의 추진으로 잠실수중보를 건설하여 한강유람선을 운행하였으며, 한강변 둔치에는 강변공원을 조성하였다. 그 결과 1986년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를 개최하여 세계만방에 송파의 존재를 알리게 되었다. 또한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과 롯데월드 등이 있어 상업유통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됨으로써 자족적 복합 소비도시로 자리매김 되었다.

유물·유적

가락동은 한강변 구석기유물 출토지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인 가락동 유적과 문정동 유적이 있다. 가락동 유적은 표고 40m 정도의 능선 사면을 깎아 만든 움집 주거지로 가락식토기라고 불리는 무문토기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송파 지역은 백제 초기의 도읍지인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한산·한성지역으로 인정되는 가장 유력한 곳으로, 서울 풍납동 토성(사적, 1963년 지정)과 서울 몽촌토성(사적, 1982년 지정)은 왕성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풍납토성은 백제 초기의 성지 가운데 가장 장대한 규모를 가진 성으로 하남위례성으로 비정되고 있다. 토성은 남북으로 길게 타원형을 이루었으며, 주위는 약 3.5㎞, 바닥 폭 40m, 높이 12~15m의 대규모 판축성으로 고대국가의 국력을 보여주고 있다.

몽촌토성은 백제 초기의 토성으로서 한성시대 백제 도성의 유력한 후보지의 하나로 추정되고 있다. 몽촌토성은 한강 남안 성내천(城內川)을 끼고 있는 구릉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토성의 둘레는 약 2.3㎞로, 외벽은 구릉 경사면을 깎아내어 급경사와 단을 만들고 두 번째 단에는 목책(木柵)을 설치하였다. 몽촌토성은 늦어도 3세기 말에 축조되어 5세기 중엽에 걸쳐 사용되었으며, 정치·군사·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거성(居城)·수성(守城)으로 알려졌다.

송파 지역은 한성백제의 도읍지로 추정되는데, 왕실과 도성민의 묘지군으로 서울 석촌동 고분군(사적, 1975년 지정), 서울 방이동 고분군(사적, 1979년 지정)이 있다. 석촌동 고분군은 백제가 한성(漢城)으로 도성을 정한 후 475년 웅진(熊津)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축조된 백제 전기 고분군이다. 이곳에는 1916년 당시 낮은 대지 위에 적석총 23기, 봉토분 66기 등 모두 89기의 고분이 있었다고 한다. 현존하는 3호분은 그 기초가 동서 50.8m, 남북 58.4m의 거대한 크기로, 현재 높이는 4.5m의 3단에 불과하지만 2단 이상이 더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단에는 큰 자연석을 비스듬히 세워 놓은 지탱석이 있고, 사용된 석재는 다듬어지지 않았다. 형태는 전형적인 고구려 계통의 상당히 발전된 기단식 적석총으로서 유일한 예이다. 1985년 서울특별시에서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석촌동 백제고분군정비계획에 따라 백제고분공원으로 조성하였다.

방이동 백제고분군의 복원된 고분은 전체 8기인데 서쪽의 제1·2·3·6호분은 이미 잠실지구 유적발굴조사단에 의해 1976년까지 발굴되었던 것을 1983년에 복원 완료하였으며, 이 때 제4·5호분도 발굴되었다. 1986년부터 ‘서울고도민족문화유적복원계획’의 일환으로 동쪽 제7·8·9·10호분 4기를 발굴하였고, 이어 동쪽 고분 사이에 도로와 주택이 있어 묘역이 단절되어 있던 것을 유적지로 연결하여 사적공원으로 확대 정비하고 1988년 9월 10일 준공을 하였다. 방이동 고분군 사람들은 석촌동 적석총인들이 자취를 감추고 난 후에도 계속해서 고구려·신라의 통치를 받으면서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문물도 그때그때 수용해가며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오금공원에는 신선경과 유인호 묘역(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991년 지정)이 있다. 거창신씨 묘역은 1456년(세조 1) 사헌부 장령을 거쳐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신선경(愼先庚)과 정부인(貞夫人) 청주한씨의 쌍분 묘역이다. 기단 받침돌 위에 웅대한 봉분으로 이루어졌으며, 특히 묘비는 연꽃무늬의 비갓으로 된 조선 초기의 특유한 형태를 하고 있다.

석촌동에는 서울 삼전도비(사적, 1963년 지정)가 있다. 본래의 이름은 ‘대청황제공덕비’이다. 이 비는 병자호란 3년 뒤인 1639년(인조 17)에 청나라의 강요에 따라 세워진 치욕의 비이다. 그 후 두 차례 매몰되었다가 1963년에 다시 발견되어 현 위치에 서게 되었다. 3개국 문자가 새겨진 비로 전면 오른쪽에는 만주(여진) 글자로 20행이 새겨져 있고, 왼쪽에는 몽고문자 20행이 있다. 뒤의 한문 비문은 이경석이 지었고, 글씨는 당시 명필인 오준, 두전은 여미징이 썼다. 한편 몽촌토성 안에 화강암으로 된 충헌공 김구 묘역(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984년 지정)이 있다. 규모는 전체 높이 4.06m, 비신의 높이 2.74m, 폭 1.02m이다. 이 비는 조선 숙종 때 박세채(朴世采)의 문인으로 우의정을 역임한 김구(金構, 1649~1704)의 신도비로서, 영의정 이의현이 짓고, 청백리 서명균이 썼으며, 두전은 영의정을 지낸 유척기의 필적으로 미술적 수법이 뛰어나며, 1743년(영조 19)에 건립되었다. 비의 북쪽에 있는 그의 무덤은 18세기 전반기의 묘제를 확인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송파 산대놀이(국가무형문화재, 1973년 지정)는 송파 지역에 전승되던 탈놀이로, 산대도감계통극(山臺都監系統劇) 중부형의 한 분파이다. 송파나루를 무대로 번창한 송파장을 무대로 연희되었다. 즉 연초가공업자와 나무장수가 많아 담배와 땔나무를 서울에 공급하였고 소시장이 성하였으며, 마행상인들의 상업근거지로서 놀이의 경제적 여건이 갖춰졌다. 그 연원은 조선 초로 올라가나 조선 후기 송파장이 번성하면서 놀이형태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연중행사로 정월대보름과 단오·백중·추석에 명절놀이로 놀았으며, 1973년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잠실동 석촌호수 공원 내에 있는 서울놀이마당에 전수회관이 있다.

아울러 놀이마당에서는 송파 다리밟기(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1989년 지정)도 연희되며, 송파 백중놀이, 송파 왼씨름들이 전해지고 있다. 거여동에 수령 600년의 향나무, 문정1동에 수령 500년의 느티나무, 방이동에 수령 500년의 은행나무 등이 서울시 지정보호수로 되어 있다.

교육·문화

송파 지역은 자연환경이 좋고, 교육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대단위 주택단지와 지하철 2·5·8호선이 지나고 간선도로가 잘 발달되어 있어 교육여건이 훌륭하다. 교육기관으로는 2015년 현재 초등학교 38개교, 중학교 27개교, 고등학교 19개교, 특수학교 2개교와 한국체육대학교 등이 있다. 또한 사회교육시설로 송파도서관이 있어 지역주민들의 풍요로운 정서와 지식·정보·문화욕구 충족 및 평생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문화시설로는 공연장, 전시관, 영화관, 도서관, 여성문화회관 등을 비롯하여 지역문화예술의 증진을 위해 활동하는 송파문화원이 있다. 특히 공연장으로서의 서울놀이마당은 송파산대놀이와 답교놀이의 전승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그 외 여러 민속놀이를 널리 보급하고 전통문화를 전수하는 시민 한마당이 있다. 몽촌역사관은 몽촌토성 출토 백제유물을 비롯한 인근의 문화유적을 비교 전시하고 있으며, 송파문화예술회관·아시아공원야외공연장·롯데월드박물관과 12개의 영화관이 있다. 특히 송파구에는 전통문화발전계승회가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송파구 교향악단과 합창단, 실버악단과 합창단, 청소년발레단과 교향악단, 민속예술단 등이 활동하고 있다. 지역언론기관으로 송파케이블TV 우리방송, 서울송파신문, 송파21 등이 있다.

송파구 내 불교는 조계종의 불광사, 태고종의 미륵암과 천생사 등이 있으며, 천주교 성당은 가락골공소에서 출발한 가락동성당을 비롯하여, 거여동·잠실·동잠실·석촌동·문정동·오금동성당 등이 있다. 기독교 교회는 1903년 송파교회 설립 이후 많은 교회당이 자리하고 있다.

몽촌토성의 북쪽 기슭에는 1992년 몽촌역사관이 건립되어 한강 유역을 포함한 백제문화의 대표적인 유적과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또 국내 최초의 어린이 박물관인 삼성어린이박물관, 국내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롯데월드 민속관 등이 있다.

송파구의 잠실종합운동장은 ‘86아시아경기대회’와 ‘88서울올림픽대회’를 성공리에 치룬 세계적인 운동장이며, 인근에 야구장·수영장·체육관이 있다. 또한 올림픽공원에는 올림픽경기를 치룬 수영·체조·테니스·역도·사이클 경기장이 있으며, 우리나라 체육정책과 행정을 총괄하는 대한체육회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있어 우리나라 체육의 요람이 되고 있다. 또한 장애인올림픽과 관련하여 곰두리체육관이 있으며, 그 외 경륜장과 근린공원에 설치된 생활체육시설이 많이 설치되어 있다.

민속

세시풍속은 일정한 시기에 주기적·관습적으로 행해지는 연중행사인데, 주로 24절기에 따라 행해진다. 특히 송파 지역은 송파장이 번창하여 다리밟기를 비롯하여 부럼깨기·백중놀이·왼씨름·지경다지기 등이 행해졌다. 특히 송파 다리밟기는 정월 보름날에 보름달을 보면서 다리 열둘을 건너면 다리(脚)가 튼튼해진다고 하여 그 날이면 남녀노소 모두 나와 여러 다리를 건넜다. 이날에는 부럼으로 딱딱한 과일을 깨물어 부스럼을 예방하였다.

송파의 민속놀이는 백중과 송파 산대놀이와 왼씨름이 유명하였다. 송파장의 입구인 송파나루에서는 백중 무렵에 열리는 난장이 볼거리였다. 이는 상인들 추렴에 의해 행해진 것으로 그 중에서 가장 성황을 이루었던 송파산대놀이와 백제인의 남성다운 기개를 과시하는 왼씨름이었다고 한다. 현재도 백중 무렵이면 서울놀이마당에서 이 민속놀이를 중심으로 하는 구민 축제가 해마다 열리고 있다. 그리고 정월보름날에는 송파 다리밟기가 행해졌는데, 송파거리를 고루 돌고 몽촌까지 가서 다리를 몇 차례 오고간 뒤 돌아오는 길에 좋은 공터를 가려 삥 둘러서서 놀량, 앞산타령, 뒷산타령 등 선소리를 합창하며 질탕하게 논 다음 달빛이 기운 뒤에야 헤어졌다. 그리고 윷놀이·연날리기·널뛰기·장꽁·석전·줄다리기·그네뛰기·씨름 등이 행해졌다.

민간에서 길흉화복이 이어지면서 현생의 부귀와 저승의 편안함을 기원하는 바램은 각종 굿거리로 남아 전하고 있는데, 재수굿, 우환굿, 지노귀굿 등이 있다.

설화·민요

가락2동 일대의 지역을 일컬어 ‘개농마을’이라 하는데, 이는 임경업장군과 관련된 지명설화이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임경업장군이 이곳의 외곽순환도로 아래 갑박산 기슭에서 자그마한 농을 발견하여 열어보니 갑옷이 나왔다는 이야기에서 ‘개농마을’이란 이름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현재 프라자아파트 2동(199번지)이 들어선 자리에 임경업장군 증조부의 묘소가 있었고, 삼환아파트 10동 지역에 해발 70미터의 야트막한 산에서 임경업장군이 썼던 투구가 나왔다 하여 산 이름이 ‘투구봉’이라 전해진다. 또 두댐이마을에는 임경업장군의 출생설화가 전한다. 가락동과 문정동 앞 벌판을 ‘정금원들’이라 부른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역원인 정금원이 있었던 데서 이름한 것인데, 지금 훼미리아파트 옆 비닐하우스가 밀집해 있는 지역으로 법조단지와 새로운 유통단지로 개발될 예정이다.

한강과 탄천이 만나는 일대를 쌀섬여울이라 부른다. 이는 인조 때 남한산성을 축조하면서 동남쪽 축성책임자인 이회의 부인이 삼남지방을 돌면서 축성자금으로 쌀을 모아오던 도중 남편이 무고로 처형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쌀과 함께 몸을 한강에 던져 남편의 뒤를 따랐다는 일화에서 전해진 것이다. 그 외 도미와 아랑의 슬픈 이야기와 삼전도비의 건립과정의 갈등을 전하는 두개의 돌거북과 비석의 설화가 있으며, 병자호란 때 인조의 남한산성 피난길에 임금을 업어 성안으로 모신 서흔암과 곤룡포 설화 그리고 전쟁터에서 누가 부정한 여인인가에 관해 논쟁한 진터벌이야기가 전한다.

송파 다리밟기 때 선소리산타령(국가무형문화재, 1968년 지정)이 불려지는데 놀량·앞산타령·뒷산타령 등이 있다. 그리고 송파장의 각설이타령 등 장타령과 상사요(想思謠)에 해당하는 토속요가 전한다.

산업·교통

1925년 대홍수가 있기 전까지 송파 지역은 양잠과 농경의 터전에 송파나루를 중심으로 송파시장의 상권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후 1963년 서울특별시에 편입되기 전까지는 한적한 농촌이었으나, 197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해 잠실지구종합개발계획 등으로 크게 변모했다. 잠실역사거리를 중심으로 대형 백화점과 호텔 및 고층 업무빌딩이 들어서고 교차로와 지하철 환승역이 설치되면서 서울 부도심 상권으로 부상하였다.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은 우리나라 최대의 도매시장으로 그 지위를 자랑하고 있다. 이 시장은 1985년에 개장되었으며 농수산물의 원활한 수요·공급을 하고 유통과정을 단축시키고자 세워졌다. 한편 잠실새내역·잠실대로 등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해 하루 유동인구가 3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알짜배기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1990년대에 들어서 먹자거리가 조성되어 다양한 음식점·주점·유통시설이 즐비하고, 재래시장과 현대적 상권이 공존하고 있다. 또한 문정동 로데오거리는 우리나라 최고의 의류쇼핑 명소가 되었다. 이곳은 1990년 당시에는 서울의 한적한 외곽주택가였던 곳이 1995년부터 외국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의류업체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상권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방이동·거여동·문정동 일대에는 제조업체가 입지해 있으며, 특히 송파구에는 올림픽을 계기로 자리한 식품접객업소와 숙박업소가 많이 발달해 있다.

교통은 강북 지역을 잇는 잠실대교와 지하철이 지나는 잠실철교 등의 교량이 있어, 서울도심지역과의 교통을 더욱 원활하게 해준다. 또한 1989년 올림픽대교가 개통됨으로써 이 지역 교통소통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그리고 1980년 지하철 2호선의 개통과 구 전역이 바둑판식으로 잘 정리된 넓은 도로망의 건설로 인구증가에 따른 교통난을 해소하였다. 그 외 동부간선도로와 서울외곽순환도로가 구의 남쪽에서 만나 경부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와 연결되며, 한강변에는 올림픽대로가 개설되어 있어 서울을 동서로 관통하고 있다.

잠실대교 남단을 기점으로 해 잠실아파트단지의 중앙을 거쳐 경기도 성남시로 연결되는 송파대로 등의 간선도로는 구의 내외를 연결시켜준다. 동서 방향으로 문정동길·로데오거리와 거여동길·중대로·남부순환로·백제고분로·석촌호수길·잠실길과 풍납로·올림픽로 등이 있으며, 남북 방향으로 송파대로와 오금로·위례성길 등이 있다.

지하철 2호선과 8호선이 관통하는데 이 두 노선은 잠실역에서 환승되어 도심과 강동·성남지역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해주고 있으며, 지하철 5호선 마천행의 종점이 된다.

관광

송파구의 관광자원은 한강이 에둘러 흐르는 풍광과 멀리 보이는 도봉산·삼각산 줄기와 청량산·대모산·청계산·관악산 줄기를 바라보는 시원함이 있다. 아울러 선사시대 이래 백제 초기의 도읍지 위례성으로 추정되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과 왕릉급 고분 등이 있어 역사문화적으로 유서가 깊은 지역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리고 잠실종합운동장과 올림픽공원·아시아공원·석촌호수 주변에는 서울놀이마당·롯데월드 등이 들어서 서울올림픽대회를 전후해 세계 속의 관광명소로 부상되었다. 올림픽공원 정문인 평화의 문은 올림픽정신을 구상적으로 나타냈으며 민족의 힘찬 기상과 기백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국제 야외조각공원이 문화올림픽행사의 일환으로 조성되어 국제 야외조각작품은 총 191점이 전시되어 있다.

또 병자호란과 관련된 청량산 수어장대로 오르는 길목에 임경업 장군의 용마가 나와 개룡리에서 갑옷을 입고 투구봉에서 투구를 쓴 후 싸움에 출전하였다고 전해지는 천마산이 공원으로 꾸며져 송파구를 한눈에 전망할 수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 광주유수들의 공덕비가 모아져 있는 비석거리, 암행어사 이건창의 영세불망비, 을축년대홍수기념비, 몽촌유허비, 부리도기념비, 송파나루터비, 한유성기념비 등이 있어 송파구의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현장에서 살필 수 있다. 또한 대단지 아파트 사이에 있는 작은 구릉에는 오금공원, 송파나루공원, 개롱공원 등이 있다.

그리고 송파구에는 관광객의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세계적 수준의 롯데월드호텔, 종합휴양업체인 롯데월드, 하이패션의 거리 롯데쇼핑센터와 로데오거리, 국내 최초의 호수공원에 설치된 매직아일랜드, 국내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롯데월드민속관 등이 있어 국제회의 개최는 물론 면세품 구매에 이르기까지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도시화가 급속히 전개되면서 전통적인 농촌의 모습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 민속시장인 전통 먹거리촌은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잠실본동 올림픽로 일대는 젊은이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가 어울려 먹고 마시는 등 관련업소가 밀집된 신천 먹자골목(일명 뒷구정)은 해가 지면 불야성을 이루며, 방이동 먹자골목 또한 같은 상황이다. 이러한 풍경은 올림픽을 계기로 관람객의 숙박과 음식을 해결하는 장소로 개발된 것이다.

송파구의 가장 큰 예술행사는 한성백제문화제이다. 1994년부터 격년으로 행해지는 이 행사는 백제 문화유적이 고이 간직된 유서 깊은 고장으로서 찬란했던 한성백제시대의 문화를 재조명, 구민의 자긍심과 애향심을 고취시키고자 개최되었다. 문화제 때는 송파장터 재현, 민속놀이마당, 국제민속축제, 동명제, 전지왕 즉위식, 한성백제역사행렬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놀이마당에서는 전통예술이 정기적으로 공연되고 있는데, 주말마다 국가무형문화재 예·기능보유자들이 공연하고 있다. 또한 송파구에서는 전통문화예술의 계승발전을 위하여 전국대학생 마당놀이경연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민속예술의 명인을 초청하여 전통 민속예술을 보여주고 있다. 또 1997년 건립된 시와 그림의 광장에서는 각종 문화행사 개최로 문화예술인들이 야외공연무대에서 포크송·재즈·성악·민요·그룹사운드연주·각종 악기연주·시낭송·전통문화예술·무용·연극·마당놀이 등이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으며, 시·그림·시화 등이 전시되기도 한다.

동(洞)
  1. 송파동(松坡洞)

송파구 중앙에 있는 동이다. 석촌호수 남쪽에 위치하며, 동쪽은 방이동, 서쪽은 석촌동, 남쪽은 가락동, 북쪽은 잠실동과 접해 있다. 조선 후기에 송파나루터가 있던 데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어 송파출장소 관할이 되었으며, 1975년 강남구, 1979년 강동구를 거쳐 1988년에 송파구가 신설되어 여기에 포함되었다. 조선시대 당시에 송파에는 교통 및 군사상의 요충지로 한강변 5진(鎭)의 하나인 송파진이 설치되었으며, 서울에서 용인·충주로 가려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큰 규모의 향시로 유명하였는데, 우시장의 명성을 뒤로 한 채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상권이 흩어졌다. 1970년부터 1980년대까지 20여 년 동안 급속히 도시화가 이루어져, 일반주택과 중산층 아파트, 상가 건물이 혼합된 지역으로 발전하였으며, 송파대로, 남부순환로, 잠실길, 백제고분로 등 많은 도로가 지나고 지하철 8호선이 지나 교통이 편리하다.

  1. 풍납동(風納洞)

송파구의 북쪽 끝 한강변에 있는 동이다. 동쪽은 강동구 성내동, 남쪽은 방이동, 서쪽은 신천동, 북쪽은 한강을 사이로 광진구 광장동과 접해 있다. 바람드리 마을을 한자로 표기하여 동명이 유래되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어 송파출장소 관할이 되었으며, 1975년 강남구, 1979년 강동구를 거쳐 1988년 송파구가 신설되어 여기에 포함되었다. 한강의 범람으로 질 좋은 흙이 퇴적되어 1970년대 이전 옹기·기와·벽돌·토관·화분 등을 만드는 도요업(陶窯業)이 발달하였으며, 이후 주택가로 변하면서 공장들이 외곽지대로 이전하게 되었다. 북쪽 한강 제방 위로 올림픽대로가 지나며 강동대로가 올림픽대교와 이어져 있고, 천호대로·풍납로와 지하철 8호선이 지나 교통이 편리하다.

  1. 거여동(巨餘洞)

송파구의 남쪽 끝에 있는 동이다.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 북서쪽 기슭에 위치하여, 동쪽은 마천동, 서쪽은 문정동, 남쪽은 장지동과 하남시, 북쪽은 가락동·오금동에 접해 있다. 거암, 김이, 겜리라 불리다가 한자로 표기하면서 거여리(巨餘里)가 되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어 송파출장소 관할이 되었으며, 1975년 강남구, 1979년 강동구를 거쳐 1988년에 송파구가 신설되어 여기에 포함되었다. 한적한 농촌지역에서 1967~1971년 사이에 서울시내 무허가 판잣집 철거민들이 이주하면서 인근의 마천동과 함께 인구가 늘기 시작하였다. 1982년 가락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 지구에 일부 포함되면서 주택지구로 변모하였다. 판교-구리 간 고속도로가 지나고 오금로가 남북으로 관통하며, 지하철 5호선 거여역이 있고, 시내버스 종점지역이기도 하다.

  1. 마천동(馬川洞)

송파구의 남동쪽 끝에 있는 동이다.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 북서쪽 기슭에 위치하여, 동쪽과 북쪽은 경기도 하남시, 서쪽은 오금동, 남쪽은 거여동과 접해 있다. 마을 동쪽에 있는 마산(천마산)에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어 송파출장소 관할이 되었으며, 1975년 강남구, 1979년 강동구를 거쳐 1988년에 송파구가 신설되어 여기에 포함되었다. 1982년 가락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 지구에 일부 포함되면서 주택지구로 변모하였다. 남한산성과 청량산을 찾는 시민의 발길이 이어지며, 일대에는 천마산·개롱리·투구봉 등 임경업장군 관련 설화가 많이 남아 있다.

  1. 방이동(芳荑洞)

송파구의 중앙 동쪽에 있는 동이다. 동쪽은 강동구 둔촌동, 서쪽은 신천동·잠실동, 남쪽은 오금동·가락동, 북쪽은 풍납동과 강동구 성내동에 접해 있다. 마을이 아늑하고 꽃이 많이 피어 방잇골로 불리다가 한자로 방이동이라 표기한 데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어 송파출장소 관할이 되었으며, 1975년 강남구, 1979년 강동구를 거쳐 1988년에 송파구가 신설되어 여기에 포함되었다. 1989년 올림픽공원 일대를 행정동으로 오륜동(五輪洞)을 신설하였다. 풍납로·위례성길·남부순환로·오금로가 바둑판식으로 나 있고, 지하철 8호선이 지나 교통이 편리하다.

몽촌토성을 중심으로 올림픽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한성백제의 역사와 한강의 기적으로 상징하는 올림픽경기장 등의 시설이 있어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으로 발전하였으며, 방이맛골이라는 특화거리가 조성되기도 하였다.

  1. 오금동(梧琴洞)

송파구의 동쪽 끝에 있는 동이다. 동쪽은 마천동과 경기도 하남시, 서쪽은 가락동·송파동, 남쪽은 가락동·거여동, 북쪽은 방이동과 접해 있다. 오동나무가 많고 가야금을 만드는 사람이 살았던 데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또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 가는 길에 이곳의 백토고개에서 오금이 아프다고 말한 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어 송파출장소 관할이 되었으며, 1975년 강남구, 1979년 강동구를 거쳐 1988년에 송파구가 신설되어 여기에 포함되었다. 1980년대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농촌마을에서 도시화가 진행되어 신흥 주택가와 공원지역으로 개발되었다. 동 가운데 성내천이 흐르며, 위례성길·오금로·남부순환로·거여동길이 있고 지하철 5호선이 지나 교통이 편리하다. 자연마을인 개농리는 병자호란 때 임경업 장군이 거여동의 투구봉에서 투구를 쓰고 이곳에서 농을 열어 갑옷을 입고 천마산에서 용마(龍馬)를 타고 출전했다 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1. 석촌동(石村洞)

송파구의 중앙 서쪽에 있는 동이다. 동쪽은 송파동, 서쪽은 삼전동, 남쪽은 가락동, 북쪽은 잠실동 석촌호수와 접해 있다. 돌 많은 마을이란 뜻으로 ‘돌마리’라고 하던 것을 한자로 석촌동이라 표기한데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이 돌은 백제 초기 적석총에서 무너져 내린 돌들이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어 송파출장소 관할이 되었으며, 1975년 강남구, 1979년 강동구를 거쳐 1988년 송파구가 신설되어 여기에 포함되었다. 이 지역은 한강 남쪽 송파시장 일대였는데, 1970년대 잠실종합개발계획과 1980년대 석촌동백제고분군정비계획에 의해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으로 개발되었으며, 백제 초기 문화유적지로 주목받게 되었다. 석촌호수길·가락로·송파대로·삼학사길·백제고분로 사방으로 통하며, 지하철 8호선이 지난다. 민속놀이로 송파산대놀이와 송파다리밟기가 전해진다.

  1. 가락동(可樂洞)

송파구의 남서쪽에 있는 동이다. 동쪽은 오금동·거여동, 서쪽은 강남구 수서동, 남쪽은 문정동, 북쪽은 석촌동·송파동과 접해 있다. 옛 마을 이름인 가락골에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1925년 을축년홍수로 송파동 일대 주민이 이주하면서 가히 살만한 땅이라 한데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어 송파출장소 관할이 되었으며, 1975년 강남구, 1979년 강동구를 거쳐 1988년에 송파구가 신설되어 여기에 포함되었다. 한적한 농촌마을이었는데 1985년 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과 시영아파트·원호아파트 등이 생기면서 우리나라 최대의 도매시장이 위치하는 상업지역과 주거지역으로 발전하였다. 뿐만 아니라 송파경찰서, 국립경찰병원, 중앙전파관리소 등의 공공기관도 있다. 송파대로와 남부순환로가 만나는 로터리는 광장을 이루고 있으며, 지하철 8호선이 지나 교통이 편리하다. 가락동 유적으로 불리는 신석기 시대 후반에서 청동기시대 초에 이르는 고분과 유물이 발굴되기도 하였는데, 이는 백제 초기 문화와도 연결되고 있다.

  1. 문정동(文井洞)

송파구의 남서쪽 끝에 있는 동이다. 동쪽은 거여동, 서쪽은 강남구 수서동, 남쪽은 장지동, 북쪽은 가락동과 접해 있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가다 이곳 문씨 마을에서 우물을 마셨던 것으로 동명이 유래되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어 송파출장소 관할이 되었으며, 1975년 강남구, 1979년 강동구를 거쳐 1988년에 송파구가 신설되어 여기에 포함되었다. 성남시와 인접한 지역으로 주택지·농지·임야 등이 혼재한 도농 복합지역이었는데, 점차 전형적인 아파트단지와 주거지역으로 발전하였으며, 그 후 로데오거리와 같은 상업지역이 들어섰다. 송파대로가 동의 중앙을 남북으로 지나 성남시로 통하며, 헌릉로·문정동길, 지하철 8호선이 지난다. 가락동 유적과 인접한 야산에서 석기와 토기가 다수 발굴되었다. 문정1동사무소 옆에는 수령 500년의 지정보호수인 느티나무가 있다.

  1. 장지동(長旨洞)

송파구의 남쪽 끝에 있는 동이다. 동쪽은 거여동, 서쪽은 문정동, 남쪽은 성남시, 북쪽은 문정동·가락동·거여동과 접해 있다. 마을 모습이 길게 형성되어 있고, 또 잔버들이 많이 있다 하여 동명이 유래되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어 송파출장소 관할이 되었으며, 1975년 강남구, 1979년 강동구를 거쳐 1988년에 송파구가 신설되어 여기에 포함되었다. 1970년대까지도 서울 근교의 농촌마을로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였으나, 송파구가 도시화되면서 서울특별시의 끝에 있어 시내버스 종점과 운수회사들이 입주하였다. 점차 주택지로 개발되었으며, 최근에 법조타운·동남권물류유통단지로 선정되었고, 성남시와 이어지는 대규모 택지개발지구로 편입되었다. 동부간선도로 입구와 서울외곽순환도로의 송파I.C가 있다.

  1. 잠실동(蠶室洞)

송파구의 북서쪽 끝에 있는 동이다. 한강변에 있으며, 북쪽은 광진구 자양동, 동쪽은 신천동, 서쪽은 탄천을 경계로 강남구 삼성동, 남쪽은 삼전동과 접해 있다. 조선시대 잠실도회(蠶室都會)가 설치된 데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1949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어 뚝도출장소 관할이 되었으며, 1975년 강남구, 1979년 강동구를 거쳐 1988년에 송파구가 신설되어 여기에 포함되었다. 1970년대 초 잠실지구토지구획정리사업에 따른 공유수면매립으로 조성된 넓은 택지에 주공아파트단지가 형성되면서 농사를 짓는 조용한 뽕나무마을은 서울과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시설물이 건설되는 상전벽해의 상업 및 일반 주거지역이 되었다. 즉 잠실종합경기장이 마련되어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대회의 개회식·폐회식을 하는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또 올림픽로 남쪽에는 유흥음식점이 밀집되고, 잠실종합시장, 롯데월드, 석촌호수, 한강시민공원 등이 조성되어 유명 관광지역이 되었다. 석촌호수에는 우리 민속과 전통놀이를 보급하기 위하여 설치한 원형무대인 서울놀이마당이 있다. 송파대로가 잠실대교와 연결되어 강북으로 이어지며, 올림픽대로가 강변을 따라 김포방향으로 이어지고, 백제고분로·올림픽로·잠실길·석촌호수길 등이 지하철 2·8호선과 연결되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또 아시아공원과 한강공원 잠실지구가 잘 정비되어 있어 여가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1. 신천동(新川洞)

송파구의 북동쪽 끝에 있는 동이다. 한강변에 있으며, 동쪽은 방이동·풍납동, 서쪽은 잠실동, 남쪽은 송파동, 북쪽은 한강 건너 성동구 구의동과 접해 있다. 조선시대 대홍수로 인해 마을 북쪽 끝에 새로 생긴 작은 물줄기가 흘러 새내·새개라고 하던 것을 한자로 신천이라 표기한 데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1949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어 뚝도출장소 관할이 되었으며, 1975년 강남구, 1979년 강동구를 거쳐 1988년에 송파구가 신설되어 여기에 포함되었다. 1970년대 초 잠실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에 따른 공유수면매립으로 조성된 넓은 택지가 개발되어 시영아파트를 중심으로 아파트단지가 조성되었다. 현재 아파트와 업무용 복합 건물이 혼재되어 있으며, 잠실역 사거리는 교통이 매우 혼잡하다. 올림픽로 인근에는 송파구청을 비롯하여 잠실전화국, 교통회관, 향군회관, 어린이교통공원 등이 있으며, 지하철 2·8호선이 지나고 풍납로·신천동길·올림픽로·잠실길 등이 바둑판식으로 이어져 교통이 편리하다. 육지로 연결되기 전에는 신천진·송파진 등의 나루터가 있었으며, 이는 잠실대교·잠실철교로 그 기능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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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미디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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