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정씨재실(淸州鄭氏齋室)은 조선 중기의 문신 정탁을 추모하고 제향하기 위해 후손들이 지은 묘하재실(墓下齋室)로,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에 위치한다. 이 재실은 그의 손자 정시형(鄭時亨, 1585∼1646)대인 17세기에 건축되었다고 하며, 청주정씨종중 소유로서, 1999년 12월 30일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약포(藥圃) 정탁(鄭琢, 1526∼1605)은 조선 명종∼선조 때 좌의정, 우의정, 영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특히 임진왜란 때 충성을 다한 명재상이다. 1603년(선조 36)에 경상북도 예천으로 돌아와 보문면 고평동에 은거하였으며, 이듬해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으로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에 봉해졌다. 충훈부에서 화사(畵師)를 보내 그의 초상을 그리게 했으며, 사후에는 향현사(鄕賢祠)와 도정서원(道正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용만문견록(龍灣聞見錄)』과 『용사일기(龍蛇日記)』, 『용사잡록(龍蛇雜錄)』 등이 있다.
이 건물은 재실과 대문채의 2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재실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ㄷ자형으로 되어 있으며, 대문채는 측면 1칸의 일(一)자형이며, 마구간 · 고방 · 방앗간 등이 있다. 재실의 대청 뒷벽에는 영쌍창(欞雙窓)이 있는데, 이로 보아 이 건물이 17세기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건물은 자연석을 쌓은 높은 기단 위에 전면이 개방된 3칸 안대청을 놓아 중심을 이루고, 서쪽에 2칸통 상방과 앞에 1칸 부엌을 두고, 동쪽에는 1칸 반 큰방 앞에 1칸 반 부엌을 설치하였다. 양 익사(翼舍) 부분은 앞으로 나오면서 기단을 계단식으로 점차 낮추어 부엌바닥을 낮게 하여 상부에 무리 없이 다락을 시설하였다. 대청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고, 뒷벽은 토벽을 쳤는데, 각 칸의 중앙에 띠장널문을 단 영쌍창 틀이 그대로 남아 있다. 상부가구는 3량가(樑架)의 간소한 구성이지만, 월량(月樑)은 자귀로 다듬었고 키가 낮은 대공 위에 종도리와 장혀를 놓았다.
비교적 고격(古格)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보존상태도 좋은 편이다.
재실 안채의 대청 뒷벽에 완형으로 남아 있는 영쌍창 유구는 건축시기를 17세기경으로 추정케 하는 근거가 되며, 이 시기 건축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