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 박운 효자 정려비

  • 종교·철학
  • 유적
  • 조선 전기
  • 시도문화유산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에 있는 조선전기 용암 박운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비.
시도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용만 (영남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4년 06월 05일
구미 용암 박운 효자 정려비 비각 전경 미디어 정보

구미 용암 박운 효자 정려비 비각 전경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에 있는 조선전기 용암 박운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비.

개설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괴곡리에 위치하며, 비문에 의해 1580년(선조 13)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16세기 선산지방(현 구미시)을 대표한 사림(士林)인 박운(朴雲, 1493∼1562)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정려비로, 2005년 3월 14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박운의 자는 택지(澤之), 호는 용암, 본관은 밀양이다. 박영(朴英)의 문인으로 중종대에 진사가 되었고, 『자양심학론(紫陽心學論)』, 『격몽편(擊蒙篇)』 등의 많은 저술을 남겼다.

용암의 학문은 야은(冶隱) 길재(吉再)에서 연원하였으며, 김취성, 김취문, 용암으로 이어지는 선산권의 성리학 학맥을 유지하고 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에게 서신으로 학문적인 문의를 하기도 하였으며, 사후에 낙봉서원(洛峰書院)에 제향되었다.

내용

비의 크기는 높이 176㎝, 너비 45㎝, 폭 18㎝이다. 전면에 ‘효자성균진사박운지려(孝子成均進士朴雲之閭)’라 종서하고, 후면에는 비의 음기로 ‘한성부우윤 최응룡 근지 만력팔년 경진 칠월 일 입(漢城府右尹 崔應龍 謹識 萬曆八年 庚辰 七月 日 立)’이 새겨져 있다.

의의와 평가

선산지방의 성리학 학맥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박운의 학문과 효행을 알게 해주는 중요한 국가유산이다.

참고문헌

  • - 『구미의 문화유산』(구미시, 2006)

  •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www.khs.go.kr)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