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에 있는 조선전기 용암 박운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비.
개설
박운의 자는 택지(澤之), 호는 용암, 본관은 밀양이다. 박영(朴英)의 문인으로 중종대에 진사가 되었고, 『자양심학론(紫陽心學論)』, 『격몽편(擊蒙篇)』 등의 많은 저술을 남겼다.
용암의 학문은 야은(冶隱) 길재(吉再)에서 연원하였으며, 김취성, 김취문, 용암으로 이어지는 선산권의 성리학 학맥을 유지하고 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에게 서신으로 학문적인 문의를 하기도 하였으며, 사후에 낙봉서원(洛峰書院)에 제향되었다.
내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구미의 문화유산』(구미시, 2006)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www.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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