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리 가실마을에 있는 성당으로, 당초 칠곡낙산성당(漆谷洛山聖堂)으로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나 2006년 2월 칠곡가실성당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본당과 사제관 등 2동의 건물로, 2003년 4월 14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가실성당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까밀로 빠이야스(하경조) 신부가 5칸 규모의 기와집 한 채를 매입하여 본당으로 사용한 것이 시초이다. 그 후 신자의 증가로 본당이 비좁아 1923년 5대 주임으로 부임한 투르뇌(여빅돌) 신부가 미사답 중 약 20두락을 매각한 대금과 신자 헌금, 투르뇌 신부 본가의 원조금 수만원 등을 모아 본당 신축공사에 착수하였다. 중국 기술자 7~8명을 초청하여 붉은 벽돌을 구웠으며, 신자들은 터를 고르는 일을 했다. 목재와 시멘트는 인근 왜관에서 소달구지로 운반했다. 중국인이 공사를 맡아 간이 고딕식 본당과 사제관, 그리고 식당을 건축했는데, 공사기간은 1년이 조금 넘게 걸렸다. 1924년 9월 28일에 있은 축성식에는 당시 일본 동경 주재 교화대사와 안화세 주교가 참석하였다.
본당은 정면 중앙부에 종탑을 둔 형태로, 종탑 안쪽의 두 짝 여닫이 판문을 통해 실내로 출입한다. 평면은 측랑이 없는 단랑식이며, 제대 뒤쪽의 제의실은 1964년 9월에 증축한 것으로, 증축부의 외벽은 시멘트 모르타르 뿜칠로 마감되어 있다. 제의실의 증축으로 성당 면적이 애초보다 26㎡ 늘어났으며, 제의실에는 신부가 외부에서 출입할 때 쓰는 전용문이 있다. 본당 실내 바닥은 마루였는데, 최근에 온수온돌을 시설하였고 그 위에 온돌마루를 깔았다. 본당 측면 중앙부에는 간략한 트랜셉트가 돌출하였다. 내부의 중앙부 천장은 목재로 원통형 볼트를 설치하고 회반죽을 발랐다. 창과 출입문의 외곽, 축기둥 및 코니스만 회흑색의 벽돌로 쌓고 나머지 외벽에는 붉은 벽돌을 사용했다. 창과 출입문 위에는 모두 2단의 반원 아치를 틀어 장식했으며, 아치 밑에는 도리아식 주두 형태를 이형벽돌로 만들어 끼워 넣었다. 종탑과 트랜셉트에 낸 개구부는 르네상스식의 반원형 아치형태이다.
한편, 구 사제관은 본당 뒤쪽에 위치하는 붉은벽돌 조적조 단층 건물이다. 평면은 장방형이며, 정면 중앙의 현관홀을 중심으로 계단ㆍ교리실ㆍ창고ㆍ침실 등을 배치한 형태이며, 현관 홀에서 통하는 지하실에는 포도주 저장실과 암실이 있다. 배면을 제외한 삼면에 테라스가 있으며, 외관은 정면 중앙의 반원 아치형 주 출입구를 중심으로 좌우가 대칭이다. 지붕은 모임지붕에 골함석을 이었으며, 지붕 4면에는 도머창을 만들었다. 외벽은 방형 기단 위에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을 영식 쌓기 방식으로 쌓았다. 문과 창문의 인방부에는 회흑색 벽돌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붉은 벽돌을 사용했다. 창문은 목제 오르내리창과 쌍여닫이 미들창을 이중으로 설치하였다. 실내 바닥은 장마루이고, 벽과 천장은 회반죽으로 마감되어 있다.
가실성당의 본당과 사제관 모두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대구교구천주교유지재단에서 잘 관리하고 있다.
가실성당은 교회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낙동강 가 선착장 가까이에 건립하여 수로를 통해 내륙으로 천주교를 전도하겠다는 생각을 반영한 것이어서 초기 천주교회사에서 중요한 성당이다. 가실성당의 본당과 사제관은 1920년대 중반에 건립된 비교적 수준 높은 벽돌조 건축물로, 건축사적ㆍ교회사적인 측면에서 역사적 가치가 큰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