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춘향가(동초제)는 판소리 명창 김연수가 여러 「춘향가」의 사설을 교합하여 해방 후 새로 짠 「춘향가」이다. ‘동초제’란 그의 호 ‘동초’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김연수가 정정렬 제를 바탕으로 이해조의 「옥중화」, 신재효·김세종의 사설과 여러 명창의 더늠을 종합해 새롭게 정리하여 많은 오류와 와전을 바로잡고 자세한 주석까지 붙였다. 이에 그의 사설은 현대 판소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된다. 전반적으로 사설은 정확하고 극적 표현은 뛰어나지만 음악적 성음은 단조로운 편이다.
김연수(金演洙: 19071974)는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거금도] 출신의 판소리 명창으로 호를 동초(東初, 東超)라고 한다. ‘동초제(東超制)’란 그의 호 ‘동초’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그는 중등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1935년 유성준(劉成俊: 18741949)에게 「수궁가」를 배웠고 한다. 그 뒤 상경하여 조선성악연구회에서 활동하면서 정정렬(丁貞烈: 18761938), 송만갑(宋萬甲, 18651939) 등에게 판소리를 배웠으며, 해방 후에는 정응민(鄭應珉: 1896~1963)을 찾아가 공부했다고 전한다.
김연수는 판소리에 입문하면서부터 사설에 많은 오류와 와전이 있다는 것을 알고 판소리 사설을 가다듬어 새로운 소리를 짜는 데 일생을 바쳤다. 김연수의 「춘향가」는 정정렬 제를 바탕으로 하고, 이해조(李海朝)의 「옥중화(獄中花)」 사설을 참고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그밖에 신재효(申在孝)와 김세종(金世宗) 제 「춘향가」와 여러 명창의 더늠이나 사설도 두루 참고한 것으로 나타난다. 김연수는 「춘향가」 사설을 정비하면서 많은 오류와 와전을 바로잡고 자세한 주석까지 붙였으므로 그의 사설은 현대 판소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된다. 김연수는 이 사설을 1967년 국악예술학교 출판부에서 출판했고, 같은 해에 동아방송국에서 전곡을 녹음하여 전하고 있다.
김연수는 「춘향가」 사설을 정리하면서 「옥중화」의 체제를 따르고 있는데, [효과] [효], [도령] [도], [방자] [방]처럼 작가의 서술이나 인물의 대화를 연극의 지문이나 배역의 대사처럼 처리하고 있다. 이것은 김연수가 판소리를 연극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김연수는 조선성악연구회를 통해 정정렬 명창의 창극에 큰 영향을 받았으며, 나중에는 스스로 창극단을 조직하여 활발하게 활동을 했고, 해방 후에는 초대 국립창극단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연수는 여러 「춘향가」 사설 중 좋은 부분을 대부분 수용해서 새로 짰기 때문에 분량이 다른 바디에 비해 월등하게 긴데, 본인의 창으로 직접 불러 8시간 2분에 이르는 「춘향가」 녹음을 남겼다. 김연수 「춘향가」에는 다른 바디에서 볼 수 없는 암행어사 만복사 불공 대목이 있고, 옥중에서 춘향이 봉사에게 해몽을 하는 대목이 길게 들어 있다. 이렇듯 다른 바디에 없는 부분을 추가하거나 간략하게 처리되는 곳을 옛 사설을 찾아 복원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전체적인 길이가 늘어나게 된 것이다. 전반적으로는 김연수 자신이 작곡한 부분이 많으므로 사설이 정확하고 연극적 표현이 뛰어나지만, 음악적인 짜임이나 성음의 다양성은 단조로운 편이다.
판소리 동초제 「춘향가」는 오정숙(吳貞淑: 19352008)이 전승하여 여러 제자를 길렀기 때문에 지금은 전국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광주광역시에는 2000년 5월 16일 방야순(方也順: 1948 )[예명 방성춘]이 보유자로 지정되어 있는데, 오정숙으로부터 전승한 것이다. 전주 일대에서는 오정숙과 이일주(李一珠, 1936~2023)[본명 이옥희]에 의해 전승되었고, 전북특별자치도에는 송재영, 장문희가 보유자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