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학자 김성일의 신도비. 묘방석.
개설
김성일은 본관이 의성, 호는 학봉(鶴峰), 자는 사순(士純)이다. 퇴계 이황(李滉)의 제자로 그 아래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1568년(선조 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두루 거쳤다. 임진왜란 때에는 경상우도 초유사(招諭使)로 임명되어 의병활동을 도와 많은 공적을 남겼다. 특히 관군과 의병을 화합시켜 전투력을 강화하는 데 노력하였으며, 1593년 경상우도 순찰사(巡察使)를 겸하여 도내 각 고을을 순회하면서 격려하던 중 진주성에서 병을 얻어 생을 마쳤다.
내용
신도비의 비신 크기는 높이 213㎝, 너비 108㎝, 두께 37㎝이며 묘방석의 규격은 높이 155㎝, 너비 175㎝, 폭 130㎝, 둘레 500㎝로 되어 있다. 신도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신과 이수를 하나의 돌로 조각하여 세워놓았으며, 머릿돌에는 두 마리의 용과 구름무늬를 새겨 놓았다.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내고장 전통 가꾸기』(안동군, 1981)
- 국가유산청(www.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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