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이씨 옥산문중에 전해오는 16∼17세기의 고문서로, 2006년 7월 18일 보물로 지정되어,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독락당에 소장되어 있다.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을 비롯하여 이 가문의 세대별 고문서가 보관되어 있다. 문서의 작성 시기는 16∼17세기의 것이 주종이며, 다른 문중과 비교해 볼 때 수량과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내용도 풍부하다. 보물로 지정된 고문서는 조선 선조 이전에 작성된 것으로 모두 12종 98점이다. 종류별로 보면 교서(敎書) 1점, 유지(有旨) 7점, 교지(敎旨) · 첩(牒) 20점, 급첩(給牒) 1점, 상소초(上疏草) 1점, 첩(帖) 1점, 입안(立案) 12점, 소지류(所志類) 7점, 분재기류(分財記類) 14점, 노비문기(奴婢文記) 18점, 토지문기(土地文記) 14점, 간찰(簡札) 1점이다.
문서의 내용은 주로 이언적의 벼슬과 관련된 부분으로, 그의 학문적 위상을 고려하여 작성된 유지를 비롯하여 세자시강원의 좌우부빈객을 역임할 당시 맺었던 친분으로 보낸 답장의 글인 인종이 직접 쓴 간찰이 있다. 특히 납속(納贖)을 통해 신분적인 제약에서 벗어나는 허통급첩(許通給牒)은 신분사 연구자료로서 가치가 높으며, 노비문기 가운데 입안(立案) 절차를 밟은 일괄문서가 16건이나 된다.
이 가문에 소장된 자료는 수량과 종류가 다양하고 내용이 풍부하며 자료적 가치도 높다. 이들 고문서는 조선시대 사회경제사 연구의 보고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