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폐지(戶主制廢止)는 2005년 3월, 민법 개정안이 의결되어 호주 관련 제도가 사라진 법 · 제도 개정이다. 2005년 3월 2일 국회는 호주 제도를 전면 삭제한 민법 개정안을 의결하였고, 본 법률안이 5월 31일 법률 제7427호로 공포되었으며 새 법률은 2008년 1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하였다. 이와 함께 호적 제도 역시 폐지되었고 새로운 신분 공부(公簿)인 가족관계등록부가 도입되어 호주 제도와 함께 발효되었다. 이로써 1950년대 초부터 반세기 넘게 지속된 호주 제도 폐지 노력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호주제폐지는 크게 사회운동적, 사법적, 입법적인 세 측면을 통해서 달성된 전면적 법 개정이다. 대한민국의 가족법 개정 운동의 역사에서 호주 제도 폐지는 가장 중요한 의제였으나 1990년대까지도 호주 제도는 지속되었다. 2000년 초 법률가 및 학자들을 중심으로 ‘호주제 위헌제청’을 제기하였고, 여성시민단체에서는 호주제폐지 운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다섯 차례의 공개 변론 끝에 헌법재판소는 2005년 2월 3일, 민법 제777조,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 제826조 제3항 본문에 대하여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법무부는 민법 제4편 제2장 ’호주와 가족‘ 및 동편 제8장 ’호주승계‘를 전면 삭제한 민법 개정안을 발의하였고, 국회는 2005년 3월 2일 법무부안을 의결하였다. 이와 같이 호주 제도 폐지는 시민사회, 사법부, 입법부의 절차를 온전히 밟은 대한민국 가족법의 대개혁이다.
호주 제도를 정의한 법 규정은 없지만, 민법에 규정된 호주의 정의, 호주권(戶主權), 호주승계에 대한 법률 조항들이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효과를 발휘하는 시스템이었다. 호주 제도는 1960년에 발효된 대한민국의 신민법에 규정되었지만, 법 제도로서의 호주 제도는 일제강점기에 이루어진 법 이식의 결과이다.
조선시대에 주호(主戶), 가장(家長)과 같은 실질적인 가족 대표의 호칭이 있었고, 제사 승계자로서의 승중(承重) 등과 같은 지위가 있었지만, 호주(戶主)는 단순히 가족이나 친족이 대표를 정하여 가족의 우두머리로 칭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1909년 민적법에 의해 호주와 친족으로 편제된 호적부가 도입되었고, 2015년에는 민적법을 개정하여 호구 조사식을 폐지함으로써 일본과 매우 유사한 가제도(家制度)를 갖추게 되었다.
호주 제도는 메이지시대 이후 일본국은 모든 국민을 하나의 가(家)에 편제하고 호적을 통해 인구 동태 등을 파악하여, 궁극적으로는 일본의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가족국가를 확립하였다. 일제의 강점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대한민국 입법부는 호주 제도를 민법에 규정하였고 호적 제도를 지속시켰다.
호주 제도는 일반인들에게 대한민국의 가계 계승제도를 계승한 것처럼 인식되기도 하였고, 유림(儒林) 등은 호주 제도를 미풍양속으로 옹호하였으며 대한민국 정부도 호주제폐지에 대해 매우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였다.
이에 따라 1950년대 민법 제정안이 마련된 이후부터 시작된 호주제폐지 움직임은 1990년대까지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호주 제도와 연동된 호적 제도, 분가(分家), 서양자((壻養子) 제도, 창씨개명 등은 모두 조선시대의 가족 관습과 일치하지 않았으며, 국제연합의 여성차별철폐협약의 가족 관련 조문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가 그 적용을 유보하게 할 만큼 호주 제도는 가부장적 제도였다.
나아가 1990년대 대한민국 사회에는 이혼, 재혼, 국제혼인 등 기존의 ‘정상적’ 가족과는 다른 형태의 혼인과 가족관계가 크게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호주 제도가 예정하고 있는 가족 모형과는 다른 다양한 가족관계와의 괴리가 심각하게 커졌다. 이렇게 호주 제도는 헌법 이념이나 인권에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소규모화되고 친밀감을 중시하는 현대 가족의 실상과 괴리되어 갔다.
호주 제도는 남성을 정상적 호주로, 여성을 가족원으로 보는 성별 고정관념을 제도화하였고, 호주승계 순위, 혼인 시 신분 관계 형성, 부가입적(夫家入籍) 등 자녀와의 신분 관계 형성 등에서 여성을 체계적으로 차별하였다. 가족 간에도 정상과 비정상 가족으로 나누어서 차별을 조장하였다. 이에 따라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10조 인간의 존엄과 자유, 제11조의 평등권, 제36조 1항에 근거하여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다른 한편, 호주 제도 존치 측은 헌법 제9조 국가의 전통 계승 의무에 근거해서 그 존치를 주장하였으나, 헌법재판소는 “전래의 어떤 가족제도가 헌법 제36조 제1항이 요구하는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에 반한다면 헌법 제9조를 근거로 그 헌법적 정상성을 주장할 수는 없다.”라고 판단하였다.
호주제폐지의 논증은 크게 호주 제도의 성차별성, 현대 가족의 변화, 전통성과 식민지성에 있었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 법률가, 학자, 시민단쳬 등의 노력으로 이 세 측면의 호주 제도의 문제성이 크게 부각되었다. 호주 제도는 민법의 한 장(章)을 이루는 다수의 조문으로 이루어졌고 존치 측의 호주제 수호론과 국가의 미온적인 태도 등으로 그 폐지란 ‘산을 옮기는 것’과 같이 험난한 과업이었다.
호주제폐지는 50여 년간 이루어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여성주의 법 개혁 운동이자 법을 통한 시민운동으로 탈식민을 향한 여성주의 법 운동이라는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호주 제도가 대한민국의 전통이지만 성차별적이어서 헌법과 불합치한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국가가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할 전통이 아닌 것인지에 관해서 불분명한 논리를 제시하였다. 이로써 호주 제도라는 법 제도의 전통과 식민지성 조명은 미진하게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