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봉사의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동리산문(桐里山門)의 개산조 혜철(慧徹)이 839년(문성왕 1)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후 쌍봉사에서 여름을 보냈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늦어도 839년 이전에 쌍봉사가 창건되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855년에는 철감(澈鑒)선사가 이곳에서 선문을 개설하여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의 기초를 마련하고 개산조가 되는데 이때 쌍봉사의 사세가 확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중기에는 혜조국사가 쌍봉사를 재건한 사실이 『쌍봉사사적비』에 기록되어 있다. 쌍봉사는 정유재란 때 대웅전을 포함한 대부분의 불사가 소실되었다. 쌍봉사 대웅전은 1628년(인조 6)에 중건되었고, 1690년, 1724년에 중창이 있었다.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대웅전은 1984년에 신도의 부주의로 전소되어 보물 지정이 해제되었고, 1986년에 복원되었다.
쌍봉사 대웅전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정사각형 평면의 3층 전각으로 건물의 구조와 형태는 목조 탑파(塔婆)의 형식을 하고 있다. 기단은 지대석, 면석, 갑석으로 이루어졌으나 그다지 높지 않으며, 전체적 조형이 일반적인 석탑과 유사한 비례와 체감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2층과 3층의 옥신은 매우 낮게 되어 있으며, 3층 지붕은 사모지붕의 형태이다. 이전에는 팔작지붕이었으나 1962년에 해체 수리하면서 사모지붕이었음이 밝혀졌다. 1986년에 복원하면서 사모지붕으로 복원하고 그 위에 보주를 설치하였다. 공포는 다포식 구조로 1층은 내외 3출목, 2, 3층은 외2출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탑의 구조는 평면이 정사각형이며, 평면 중심에 심주(心柱)가 있다. 심주는 구조적 역할 뿐만 아니라 심초석에 사리를 봉안함으로써 탑의 상징적 중심이다. 쌍봉사 대웅전의 심주는 공중에 떠 있다. 따라서 1층은 내부 바닥에 마루를 깔고 불단을 마련하여 2001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화순쌍봉사대웅전목조삼존불상을 모시고 불전의 역할을 수행한다. 천장은 우물천장이다. 그러나 2, 3층은 통층(通層)으로 되어 그 중심에 심주가 있다. 각 층 지붕의 추녀들은 모두 뒷뿌리가 상층 기둥에 관통되어 심주에 연결되어 있다. 심주는 출목 밖의 하중을 받는 추녀의 지렛대 역할에 의해 지탱되어 진다.
쌍봉사 대웅전은 목조탑파 형식의 3층 불전이다. 평면과 구조가 목조탑의 형식을 따르면서 중앙의 심주가 공중에 떠있는 방식을 취하여 내부에 불단을 조성하고 불상을 봉안함으로써 불전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쌍봉사 대웅전은 1984년에 소실된 후 1986년에 원형대로 복원한 건물이다. 비록 보물에서 해제되었지만 이 건물은 법주사 팔상전과 함께 목조 탑파의 형식의 희귀한 건물로 목조 탑파 양식 연구에 있어 중요한 건축이다. 또한 내부는 불상을 모시고 불전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어, 17세기 목탑의 내부공간의 활용과 그에 따른 구조의 변화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