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가죽이나 질긴 천에 여러가지 색의 안료를 묻혀서 그리는 그림. 비백서.
연원 및 변천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에 비백서가 주로 민간에서 유행했다. 당시 실학자 유득공(柳得恭)은 『경도잡지(京都雜志)』에서 “비백서는 버드나무의 가지를 깎아 그 끝을 갈라지게 하고 먹을 찍어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 등의 글자를 쓴 것이다. 점을 찍고, 선을 긋고, 파임하고, 삐치는 것을 마음대로 해서 물고기, 게, 새우, 제비 등의 모양을 만든다”라고 설명했다. 진(晉)나라 유소(劉劭)가 지은 「비백서세명(飛白書勢銘)」에서 그 형상이 “새, 물고기, 용, 뱀, 거북, 짐승, 신선과 같고, 모기 다리가 파도에 쓸리니 해서(楷書)․예서(隸書)․팔분(八分)과 같다”고 했다. 이에 근거하여 중국의 민간에서도 납작한 죽필로 글씨를 쓸 때, 점과 획의 꽃, 새, 짐승의 형상을 비백체로 바꾼다.
버드나무나 대나무로 쓰는 비백서는 근대에 와서 가죽이나 중절모의 재료처럼 두터운 천 조각에 여러 가지 색의 안료를 묻혀서 그림이나 문양과 함께 그린 혁필화로 발전했다.
현황
참고문헌
- 『허균의 우리 민화 읽기』(허균, 대한교과서, 2006)
- 『중국서예80제: 서예 및 전각 입문』(양진방 외, 곽노봉 옮김, 동문선,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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