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감모여재도는 유교의 제사 공간인 사당을 그려 놓은 그림이다. ‘감모여재’란 ‘조상을 사모하는 마음이 지극하여 그분들이 살아 계시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뜻이다. 이 그림은 대개 지방 제사를 위해 지방을 붙일 수 있는 위패가 그려져 있다. 형식은 크게 전각에 담장까지 둘러쳐져 있는 담장 전각형, 전각만 있는 전각형, 제단이 차려져 있는 전각 제단형이 있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는 감모여재도와 화조화, 감모여재도와 산수화 등 다른 제재와 조합하는 형식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감모여재도는 유교식 제사를 서민들에게 퍼지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정의
유교의 제사 공간인 사당을 그려 놓은 그림. 사당도.
개설
연원 및 변천
유교식 제사를 보여 주는 감모여재도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다. 유교가 백성들의 생활 구석구석에까지 스며든 것은 이 무렵에야 비로소 이루어졌다. 백성들의 생활을 유교식으로 바꾸는 데 무려 500년 가까운 세월이 소요된 것이다. 그만큼 서민들은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감모여재도」는 화병과 같은 불교적인 요소가 남아 있기는 하여도 지방을 붙여 제사를 지내던 유교식 사당도이다. 사당 양쪽에 놓인 과일을 꽂은 화병은 불화인 감로도에서 볼 수 있는 불교식 제사 용품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화병에 꽂혀 있는 유자와 석류가 풍만하게 표현되었다. 이처럼 과장하고 강조한 것은 이들 과일이 갖고 있는 다남 다산이란 상징성을 강조하기 위한 고려로 보인다. 전체의 틀은 매우 정연하고 형식적이지만, 처마 끝의 장식을 감각적으로 처리하고 양쪽 화병에 있는 과일을 풍만하고 과장되게 표현한 점에서 소박하면서 상징적인 민화의 매력을 엿볼 수 있다.
내용
그런데 제수로 쓰인 음식은 일반 제사상에 놓이는 포 · 생선 · 나물 · 곶감 · 밤은 보이지 않고, 수박 · 참외 · 석류 · 유자 · 포도가 주류를 이룬다. 이들은 모두 다산 · 장수 · 행복을 기원하는 길상의 상징이다. 여기서 우리는 조상께 경배하면서 제수를 통해 자신들의 행복도 함께 기원하는 후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위한 제사인 것이다.
감모여재도의 형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전각에 담장까지 둘러쳐져 있는 담장 전각형, 전각만을 중점적으로 그린 전각형, 전각에 제단이 차려져 있는 전각 제단형이다. 또한 19세기 말∼20세기 초에는 감모여재도와 화조화, 감모여재도와 산수화 등 다른 제재와 조합하는 형식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현황
19세기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 감모여재도가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비교적 제작 시기가 이른 예로는 일본 민예관 소장 「감모여재도」, 일본 고려미술관(高麗美術館) 소장 「감모여재도」를 꼽을 수 있고, 이 밖에 국립민속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가회민화박물관, 조선민화박물관, 온양민속박물관, 계명대학교 행소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주자가례(朱子家禮)』
- 「조선 후기 제사도 연구」(정현, 경주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7)
- 「조선시대 감모여재도 연구」(지은순,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2)
- 「조선 민화에 끼친 유교의 영향」(정병모, 『미술사학』 23, 2009)
- 「감모여재도 연구」(이상현,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8)
- 「유교식 제사 실천을 위한 감모여재도」(김시덕, 『종교와 그림』, 민속원,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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