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법수 ()

장승법수
장승법수
불교
문헌
국가유산
고려후기부터 조선전기까지 생존한 승려 무학자초가 원나라 가수의 「장승법수」를 저본으로 1389년에 중간한 불교서. 사전 · 사찰본.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장승법수(1981-1)(藏乘法數(1981-1))
분류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사찰본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1981년 03월 18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후기부터 조선전기까지 생존한 승려 무학자초가 원나라 가수의 「장승법수」를 저본으로 1389년에 중간한 불교서. 사전 · 사찰본.
개설

198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원(元)나라의 승려 가수(可遂)가 대장경에 수록된 모든 명수(名數: 단위의 이름과 수치를 붙인 수(數), 예컨대 ‘일음(一音), 이제(二諦), 삼관(三觀), 사지(四智), 오안(五眼), 육상(六相)…팔만사천진노(八萬四千塵勞) 등’)를 수집하여 제1획(예컨대, ‘일심(一心)’부터 획수(劃數) 단위의 차례대로 각 용어나 단어를 배열함으로써, 불교를 공부하는 이들이 찾고자 하는 해당 단어의 첫글자로 손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편찬하여 간행한 원(元)나라의 책(元本: 壽慶寺本)을 저본(底本)으로 1389년(공양왕 1) 무학대사(無學大師) 자초(自超)가 복각(復刻) 간행한 불경(佛經)사전이다.

편찬/발간 경위

권말(卷末)에 ‘무학대사(無學大師)가 1389년(공양왕 1)에 간행(重刊)하였다’는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발문(跋文)이 남아 있다. 같은 해 보물로 지정된 성암본에는 이색의 발문이 없다.

서지적 사항

목판본. 상하불분(上下不分)권 1책. 호암박물관 소장. 선장(線裝)의 형태로 장정되어 있다. 표지는 그 지질(紙質) 및 장침(裝針)한 실선으로 보아 후대에 개장(改裝)한 듯하고, 이면(裏面)에는 많은 낙서가 되어 있다. 표제(表題)는 자색(紫色) 바탕의 제첨(題簽)에 ‘법수(法數)’라고 묵서(墨書)되어 있으며, 그 아래에 작은 글씨로 ‘전(詮)’이라 표기(表記)하고 있고, 그 하단에는 ‘봉화(奉畵)라는 글자가 기입되어 있다. 권수(卷首)의 서문(敍文)에는 자정사(資正使)인 강공(姜公)이 ‘서암(西菴) 가수(可遂)가 지은 「장승법수」의 선본(善本)을 얻어 진상(進上)하였다’는 내용으로 보아, 이 책의 저자가 가수(可遂)임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1355년(至正 15, 을미)에 보은선사(報恩禪寺)의 승려 굉연(宏演)이 쓴 서문(序文)이 수록되어 있다. 이 서문에 이어 ‘석가종파(釋迦宗派)’라는 종파도가 1장 수록되어 있다.

서지형태는 좌우쌍변(左右雙邊)이고, 책크기는 28.7㎝✕17.3㎝, 반곽(半郭)크기는 21.7㎝✕15.2㎝이다. 본문에는 계선이 있으며,[有界] 반엽(半葉) 6행(行)에 자수(字數)는 일정하지 않다. 판심은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이다.

내용

제목에 있는 ‘장승(藏乘)’은 대장경(大藏經)을 가리키는 별칭(別稱)이며, ‘법수(法數)’는 일종의 사전을 의미한다. 즉 이 책은 대장경에 수록된 명수(名數)를 획수의 차례대로 배열하여 검색하기 편리하게 편찬한 일종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장승법수」의 본문은 ‘일심(一心)’이라는 「대승기신론」의 용어부터 획수순(劃數順)으로 시작된다.

「장승법수」에 이어 「대승백법론명수지도(大乘百法論名數之圖)」, 「팔식심왕제문료간(八識心王諸門料簡)」, 「제불신토(諸佛身土)」, 「제승개합통유육종(諸乘開合通有六種)」, 「원각경의 소초(圓覺疏鈔)에 의거한 서역차방제사판교명수(西域此方諸師判敎名數」, 「대소승계법도(大小乘戒法圖」, 「수증지위오교개합부동(修證地位五敎開合不同)」 등이 차례로 도식화(圖式化) 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불가(佛家)의 법수(法數)는 이 책 이외에 당(唐)나라 현수(賢首)가 편찬한 구집(舊集)이 전래되지 않아, 명(明)나라 행심(行深)이 다시 엮어 1427년에 간행한 명판본(明板本)을 입수하여 조선의 개민(疥敏)이 1500년(연산군 6)에 경상도 합천 봉서사(鳳栖寺)에서 개판(開板)한 「현수제승법수(賢首諸乘法數)」와 그 복각 판본이 여러 종 전래된다.

현수의 「제승법수」가 「장승법수」보다 좀 더 포괄적이고 편집체제도 더 체계가 있기 때문에, 「장승법수」는 조선시대에는 더 이상 간행되지 못하였다. 이 책을 고려에서 간행할 때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발문(跋文)을 남겼는데 ‘고려말의 무학대사 자초가 1389년(공양왕 1)에 직접 간행하였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어서, 불교사(佛敎史)적으로 의미있는 가치를 지닌다.

참고문헌

문화재청 국가기록유산(www.memorykorea.go.kr)
관련 미디어 (5)
집필자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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