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지. 천주교 성지(聖地).
개설
변천
1866년부터 시작된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공주에서 순교한 사람은 기록상으로 190여 명이 확인된다. 이들 중에서 주로 감옥 등 은밀한 곳에서 비밀리에 집행되는 교수형(絞首刑)이나 백지사형(白紙死刑)을 제외하고, 참수형이나 장살형(杖殺刑) 등 공개적으로 실시되는 형벌에 처한 이들 중 다수가 이곳 황새바위에서 순교했을 것이다.
1911년 2월부터 6월까지 노르베르트 베버(N.Weber) 아파스가 한국을 여행하고 기록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Im Lande der Morgenstille)'라는 기행문에서 “참수당한 이들의 무덤에서 바라본 공주 형장(刑場)”이라는 제목의 삽화를 그려 황새바위에 관한 관심을 표현하였다. 1937년, 공주성당 헌당을 기념하여 발간한 『공주 천주교회 연혁(公州天主敎會沿革)』에 이존창이 이곳에서 순교한 사실을 기록하였다.
1978년, 공주 본당 신자 지재희가 황새바위 순교지에 대한 구전을 듣고 지역 노인들에게 위치를 확인한 후 당시 제2대 대전 교구장 황민성(黃旼性, 베드로) 주교에게 보고했다. 이에 대전 교구가 부지 구입 비용을 지원하여 1980년 12월, 공주 본당 주임 김동억(金東億, 바오로) 신부가 황새바위 언덕부지 2,410평을 구입하여 성지 조성의 기반을 마련했다. 1982년에 설립된 교동 본당 초대주임 조장윤(베르나르도) 신부가 1984년 3월 11일, 지재희를 위원장으로 하는 ‘황새바위 성역화 사업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본격적인 성지개발에 나섰다. 1985년에 기록상 전해오는 순교자 248위의 이름을 내부에 새긴 무덤 경당과 순교탑 등을 완공하고 제3대 대전 교구장 경갑룡(景甲龍, 요셉) 주교가 축복식을 집전하였다. 이후에도 무덤 경당 앞 광장에 12사도를 상징하는 돌기둥을 세우고 고통의 성모자상(聖母子像)을 안치하고 ‘십자가의 길’을 조성했다. 2002년 11월에는 순례자 성당을 완공하였다.
2008년 1월 23일에 황새바위 순교 성지가 교동 본당에서 분리되고 초대 성지 전담 신부로 최상순(비오) 신부가 임명되었다. 같은 해 12월 22일에는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후 2012년 10월, 무덤 경당을 재정비하고 편의시설을 확충하였다. 기존 경당에 수록한 순교자 248명을 포함하여 공주에서 희생된 것으로 알려진 337인의 명단을 지하에 새겨 기념하도록 했다. 2015년에 제2대 전담 한태호 신부는 학술대회와 연구를 통해 정리된 자료집을 발간하고, 황새바위 순교 성지 기념관을 열어 공주의 순교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노르베르트 베버 지음, 박일영·장정란 옮김, 『고요한 아침의 나라』 (분도출판사, 2012)
- 『공주 천주교회 연혁』 (공주성당, 1937)
- 『순교자들의 전기』 (대전교구사자료 제3집, 천주교 대전교구, 1991)
- 『중동본당 100년사』 (대전교구 중동천주교회, 1997)
- 『황새바위 순교성지 자료편』 (천주교대전교구 황새바위순교성지 내포교회사연구소, 2020)
인터넷 자료
- 황새바위성지(http://www.hwangsae.or.kr)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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