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세리성당

  • 종교·철학
  • 단체
  • 개항기
  • 일제강점기
  • 시도자연유산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 교구 소속 성당.
이칭
  • 이칭공세리의 성 베네딕토 성당
단체
  • 상위 단체천주교 조선대목구(朝鮮代牧區)
  • 설립 시기1890년
  • 설립자파스키에(P.Pasquier, 朱若瑟) 신부/ 드비즈(E.Devise, 成一論) 신부
  • 설립지간양골/공세리
  • 소재지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성당길 10
  • 전신예산 간양(間良)골본당
시도자연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3년
  • 김성태 (내포교회사연구소)
  • 최종수정 2025년 04월 21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공세리성당은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 교구 소속 성당이다. 박해기 이후 충청도에서 설립된 최초의 본당이다. 1890년에 예산 간양골에서 시작되었으나 1895년에 공세리로 이전되면서 공세리본당이 되었다. 드비즈 신부는 옛 공세창 자리를 확보하여 1922년에 현재의 성당을 건축하였다. 공세리성당은 숨어 있던 천주교회를 공공연하게 드러냄으로써 긴 박해의 종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성당이다.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 교구 소속 성당.

설립 목적

1784년, 교회 창설 이래 지속적으로 교세를 확장해 가던 천주교회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후 1886년, 조불수호조약(朝佛修好條約)에 의해 프랑스 선교사들의 활동이 재개되면서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가장 큰 교세를 형성했던 충청도 지역에는 1890년에 간양(間良)골과 양촌(陽村)에 파스키에(P.Pasquier, 주약슬(朱若瑟)) 신부와 퀴를리에(J.Curlier, 남일량(南一良)) 신부가 파견되었다. 박해 후, 충청도에서 처음으로 설립된 간양골 본당과 양촌 본당은 흩어진 신자들을 모아들이는 한편, 와해한 신앙 공동체 재건의 발판이 되었다. 아울러 박해로 인해 은밀하게 순회하던 천주교회가 가시적인 곳에 정주(定住)하며 자신을 드러내는 교회로 바뀌게 되었다.

변천 및 현황

1895년, 제2대 주임으로 파견된 드비즈 신부(E.Devise, 성일론(成一論))는 간양골 대신 공세리로 부임하였다. 공세리는 충청도 지역의 세곡(稅穀)을 수납하던 공세곶창(貢稅串倉), 공진창(貢津倉)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드비즈 신부는 이곳에 이미 마련해 둔 한옥을 개조하여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본당의 공세리 이전으로 아산만(牙山灣)에서 삽교천(揷橋川), 곡교천, 안성천(安城川)으로 이어지는 경기도 남부와 충청도 지역 전교 활동의 거점이 되었다.

드비즈 신부는 이듬해 명동으로 전임되었다가 1년 만인 1897년에 재부임하였다. 곧이어 공세창 언덕 일대를 매입하고, 1899년 8월에 성벽 주변에 한옥 사제관과 성당을 건립하였다. 1905년에는 조성학당을 세워 지역의 아동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의료 지식과 약품을 이용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해 주었다. 특히 종기 치료에 유용한 고약(膏藥)이 유명했다.

1920년부터는 새 성당 건축이 시작되었다. 신자들의 수효(數爻)가 증가하여 기존의 한옥 성당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터 닦기 공사를 시작한 지 2년여 만에 충청도에서는 처음으로 서양식 성당이 건축되었다. 드비즈 신부가 직접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들을 고용하여 고딕식의 성당과 사제관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1922년 10월 8일, 드브레(E.Devered, 유세준(兪世俊)) 주교의 집전으로 축성식(祝聖式)을 가졌다. 성당의 수호자는 성 베네딕도(St. Benedictus)이다.

이후 성당은 1998년 7월 28일,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보다 앞서 300년 이상의 수령을 가진 느티나무 2그루와 팽나무가 1982년에 보호수로 지정된 바 있다. 공세리성당은 고풍스러운 건물과 고목들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으로 주목받고 있다.

의의 및 평가

공세리성당은 박해기 이후 충청도에서 설립된 최초의 본당으로, 박해로 인해 숨어 있던 천주교회를 공공연하게 드러냄으로써 긴 박해의 종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성당이다.

참고문헌

  • 단행본

  • - 『공세리 본당100년사』 (천주교 대전교구 공세리교회, 1998)

  • - 『공세리 성지 · 성당 자료집』 (주교 대전교구, 2008)

  • - 공세리성지성당 박물관 편『천주교 중심의 내포학』 (공세리성지성당 박물관, 2023)

  • 논문

  • - 서봉세, 「공세리 본당 설립에 관하여」 (『복음과 문화』 10, 대전가톨릭대학교, 2006)

주석

  • 주1

    : 못살게 굴어서 해롭게 함. 우리말샘

  • 주2

    :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살다. 우리말샘

  • 주3

    : 나라에 조세로 바치는 곡식. 우리말샘

  • 주4

    : 성당(聖堂)과 본당(本堂)이 내용상 혼용되는 경우가 많으나, 본래 성당은 예배가 이루어지는 건축물 자체를 가리키고, 본당은 관할지역의 신자 공동체 또는 주임 신부가 상주하는 성당 영역 일체를 뜻한다.

  • 주5

    : 주로 헐거나 곪은 데에 붙이는 끈끈한 약. 우리말샘

  • 주6

    : 낱낱의 수. 우리말샘

  • 주7

    : 12세기 중엽에 유럽에서 생긴 건축 양식. 성당 건축의 전형적인 것으로, 교차 늑골로 받쳐진 아치와 하늘 높이 치솟은 뾰족한 탑 따위의 수직 효과를 강조한 것이 특색이다. 우리말샘

  • 주8

    : 축성을 행하는 거룩한 의식. 곧 예식과 기도를 통하여 사람이나 물건을 축성하는 교회의 의식을 이른다. 우리말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