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자회담은 남북문제의 해법을 당사국 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다자 틀 내에서 찾아보려는 회담으로 1953년 정전협정 조인국이자 북한에 영향력이 있는 중국이 참가하면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남한은 한반도 비핵화 등 회담을 통해 합의하는 사항들에 대한 북한의 이행을 강조하는 반면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주안점을 두고 식량 지원이나 제재 완화를 끌어내려는 행보를 보여 난항을 겪고 있다. 핵개발로 유엔의 감시를 받고 있는 북한은 미군철수, 한․미 대규모 전쟁연습 중지, 전쟁 무기의 한반도 내 반입 금지, 북미(北美)간 평화 협정 체결을 주장하고 있고, 남한은 남북한이 주당사자가 되고 미국과 중국은 증인 자격으로 서명하는 ‘남북 평화 합의서’의 체결을 주장해 합의도출이 쉽지 않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한반도는 북방삼각(조․소․중)과 남방삼각(한․미․일)관계로 대립되어 왔으며, 그 후 평화공존과 데탕트시대를 맞아, 전(前) 미 국무장관 키신저가 제시한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정책구상은 남 · 북한 당사자와 미국 · 중국이 참여하는 4자회담이었다. 1996년 4월 16일 제주도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미국 빌 클린턴(Bill Clinton) 대통령이 ‘한․미 공동발표문’을 통해 개최를 제의했다. 4자회담 제1차 예비회담이 1997년 8월 5일 미국 뉴욕 콜럼비아대학에서 열린 데 이어 1차 본회담이 1997년 12월 1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제3차 회담이 1998년 10월에 개최되었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미국이 처음 주장한 4자회담 구상은 중국과 북한이 거부하여 무산되었으나 그 후 다시 1997년에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 진행해온 것이 남한․북한․미국․중국 4자회담이다. 예비회담과 본회담이 수차례의 결렬과 개최를 반복하며 열렸지만 아직 특이할 만한 해법이나 성과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여기서 파생된 대안으로 3자회담은 미국이 제안한 것으로 남 · 북한과 미국 등 3국이 참여하는 회담을 의미하지만 북한과 중국의 반응이 부정적이다.
현행 남북한 정전협정은 6·25전쟁의 교전 당사자인 미국(UN군), 중국, 북한 등 3자간에 체결된 것이다. 따라서 4자회담(2+2회담)은 정전협정의 당사자들과 새롭게 한국이 참여해 남북한과 미국, 중국 4개국이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 기존의 정전협정을 발전시켜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남북한이 평화협정의 직접 당사자이고 미국과 중국은 관련국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1996년 미국 대통령 클린턴과 한국 대통령 김영삼이 제주도에서 가진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문제는 한국이 주도한다고 선언한 것은 이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4자회담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한국과 미국 정부에 통보해 왔지만 남북한과의 역할 차등화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북한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4자회담을 수용한다면 영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에 관한 논의는 급진전될 것이라는 것이 한국 정부의 입장이다. 그러나 북측은 정전 이후 협정의 상대는 한국이 아닌 미국임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어 현재 4자회담은 제안만 된 상태에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중국과 북한의 소극적인 입장 때문에 기대하는 바는 없지만 4자회담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본 틀로서 2000년과 2007년 양국 국방당국자들이 남북을 오가면서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기로 합의한 것은 안보적 차원에서 볼 때 또 다른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핵문제를 풀기위한 다자안보회의 역시 4자회담이 성사되어야만 더욱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