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한국전쟁 시기 후방 농민들의 전선원호사업.
개설
역사적 배경
최초의 전선 원호미 헌납은 1952년 11월 평원군에서 수확을 많이 한 농민들로부터 시작되었고, 북한에서는 이것이 온 나라에 퍼져 전군중적인 전선원호미헌납운동으로 발전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주의 한 농민은 벼 100가마니를 전선원호미로 헌납하였으며, 신천군의 한 여성농민은 80가마니의 양곡을 전선원호미로 제공했다. 평원군의 농민들이 쌀 1,800여 가마니를 헌납한 것을 비롯하여 평안남도의 농민들은 1953년 2월 말까지 근 6,400가마니의 전선 원호미를 헌납하였다. 1953년 4월말까지 각지에서 헌납된 전선원호미는 수 천톤에 달했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전선원호사업은 녀맹원들의 중요한 임무: 녀맹중앙위원회 일군들과 각도 녀맹위원장들을 만나시여」(1951.8.15)
- 「고지의 용사들과 한마음이 되어」(『로동신문』2012.7.28)
- 「녀성들을 전선원호사업에 힘있게 불러일으키시여」(『우리 민족끼리』2011.9.27)
- 「조국과 인민의 기억속에 영생하는 참된 애국농민:공화국영웅 김제원동지의 삶을 더듬어」(『로동신문』2011.4.23)
- 「한전호에 선 심정으로」(『로동신문』2010.7.27)
- 「조국해방전쟁승리에 기여한 전시대중운동」(『조선중앙통신』2003.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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