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민군4·25예술영화촬영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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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조선인민군4.25예술영화촬영소
평양 조선인민군4.25예술영화촬영소
정치·법제
단체
조선인민군에서 운영하는 예술영화촬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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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인민군에서 운영하는 예술영화촬영소.
내용

조선인민군4·25예술영화촬영소는 ‘항일무장혁명 투쟁전통을 이어받아 군인들을 전쟁경험으로 무장시키며, 군사노선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화촬영소이다. 부지면적은 20만 500㎡로 인민군을 중심으로 남녀 노동자와 농민이 서 있는 3인 조각상을 상징으로 하고 있다. 조선인민군에서 운영하는 영화촬영소로 주로 항일혁명투쟁, 6·25전쟁, 사회주의 건설기의 인민군과 일반주민의 활동상을 영화로 제작하고 있다. 북한 최대, 최고의 예술영화촬영소인 조선예술영화촬영소와 더불어 예술영화를 창작하는 양대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1959년 5월 16일에 조선인민군 창립일인 2월 8일을 따서 조선인민군2·8예술영화촬영소로 창립하였다가 이후 1970년 1월 13일에 조선2·8예술영화촬영소로 명칭을 바꾸었다. 김일성은 1971년 10월 22일 영화촬영소 일군들 앞에서 연설 ‘조선2·8예술영화촬영소의 몇가지 과업에 대하여’을 남기기도 하였다. 영화촬영소의 명칭은 1995년 12월에 조선인민군4·25예술영화촬영소로 다시 바뀌었다. 이는 조선인민군의 창립일이 2월 8일에서 김일성 주석이 1932년 4월 25일에 만주 안도현에서 반일인민유격대를 조직한 날로 바뀌면서 영화촬영소의 명칭도 바뀐 것이다.

군인들은 물론 근로자들을 ‘혁명적으로 교양’하고 ‘당의 군사노선을 관철하는데 이바지하는 작품’들을 창작한 공로로 1984년에 ‘김일성 훈장’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는 「남강마을 녀성들」(1964), 「사령부를 멀리 떠나서」(1977), 「금희와 은희의 운명」(1974), 「도라지꽃」(1987) 등이 있다. 「도라지꽃」(1987)은 평양에서 열린 제1차 평양영화축전(쁠럭불가담 및 기타 발전도상나라들의 평양영화축전)에서 최우상인 ‘홰불금상’을 받았다.

참고문헌

『북한영화의 역사적 이해』(민병욱, 역락, 2005)
『북한의 문학과 예술』(전영선, 역락, 2004)
『김정일 문예관 연구』(문화체육부, 1996)
『문학예술사전』중(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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