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민족통일협상회의는 1989년 9월 28일 북한이 남한의 정부·정당·사회단체 대표들에게 제안한 회의이다. 1973년 김일성의 ‘대민족회의’ 제안 이후 북한은 정치협상회의 형태의 대남 정치선전 공세를 계속 전개해 왔다. 민족통일협상회의는 1989년 북한의 외교부 부장 김영남이 제안한 것으로 남북 각각 60명이 조국통일 방도 등을 다루자는 제안이었다. 평양과 서울에서 번갈아 개최하되, 모든 대표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참가하는 원탁회의 방식을 제안하였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이 제안이 남한의 국론 분열을 목적으로 한 대남 선전의 일환이라고 판단하였기에 제안을 거절하였다.
정의
1989년 9월 28일 북한이 남한의 정부·정당·사회단체 대표들에게 제안한 회의의 한 형식.
개설
역사적 배경
북한은 이후에도 제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1983년 1월), 남북연석회의(1988년 1월), 남북정치협상회의(1977년 1월, 1989년 1월), 민족통일협상회의(1989년 9월), 당국·정당수뇌협상회의(1990년 1월), 민족통일정치협상회의(1991년 1월, 1993년 8월) 등 ‘정치협상회의’ 형태의 대남 정치선전 공세를 계속 전개해 왔었다.
경과
이 제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회의의 구성 및 규모는 남북의 당국과 주요 정당, 단체 대표들이 참가하되 북과 남이 같은 수로 하여 모두 60명 정도로 참가하자고 제안했다. 의제는 남북의 당국과 정당, 단체들이 내놓은 통일방안들을 광범히 협의하고 조국통일 방도에 관한 민족공동의 선언을 발표할 데 대한 문제를 토의하며, 그밖에 나라의 평화통일을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다른 건설적인 제안들도 함께 토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회의 장소는 평양과 서울에서 번갈아 개최하되 첫 회의는 1990년 2월 20일에 평양에서 진행하며, 회의 형식은 모든 대표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참가하는 원탁회의 방식으로 하고 협상의 틀 안에서는 남북의 최고당국자들이 아무 때나 만나 나라의 통일과 남북관계와 관련되는 제반 문제들을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또한 민족통일협상회의의 성과적 소집을 위하여 1989년 11월부터 1990년 1월말까지를 예비회의 기간으로 정하고 그동안 남북의 당국과 정당, 단체들 사이에 쌍무적 또는 다무적 접촉을 통하여 회의준비를 추진시켜 나가자고 제안하였다.
결과
참고문헌
- 『조선대백과사전』10(백과사전출판사, 1999)
- 디지털 북한백과사전(www.kplibrary.com)
- 통일부 통일교육원(www.uniedu.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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