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

국방
개념
1989년 9월 11일 국회 특별연설을 통해 노태우 대통령이 제시한 제6공화국의 통일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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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1989년 9월 11일 국회 특별연설을 통해 노태우 대통령이 제시한 제6공화국의 통일방안이다. 주요내용은 남북정상회의, 남북각료회의, 남북평의회, 공동사무처 등이 포함된 ‘남북연합’ 구성이다. 1987년 민선정부가 탄생과 민주화의 진전으로 새로운 통일정책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남북연합을 구성해 남북 간 개방과 교류협력을 실현하고 민족사회의 동질화와 통합의 기반을 다져나가자는 통일안을 제시했다. 이 통일방안의 의의는 통일의 주역인 민족구성원, 즉 국민들의 다양한 여론을 수렴해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정의
1989년 9월 11일 국회 특별연설을 통해 노태우 대통령이 제시한 제6공화국의 통일방안.
개설

1989년 9월 11일 국회 특별연설을 통해 노태우 대통령이 제시한 제6공화국의 통일방안으로 남북정상회의, 남북각료회의, 남북평의회, 공동사무처 등이 포함되어 있는 ‘남북연합’ 구성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연원 및 변천

1980년대 후반에 일어난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1987년 6월 29일 ‘6․29선언’으로 합의점을 찾았고 동년 12월 16일에 실시된 대통령 직접선거를 통해 18년 만에 민선정부가 탄생했다.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1980년대 말부터 한국사회 내에 통일논의가 확산되었고 대외적으로는 동서화해와 사회주의권의 개방이 이뤄졌다. 이러한 대내외적 흐름은 새로 출범한 6공화국 정부로 하여금 새로운 통일정책을 세울 필요성을 증가시켰다.

이에 따라 노태우 정부는 과거 정치와 이념을 바탕으로 한 국가 중심의 통일 개념을 공동체 중심의 개념으로 전환하고 원칙과 과정, 실현절차와 미래상 등을 체계화하고 1989년 9월 11일, 국회 특별연설을 통해 새로운 방안을 제시했다. 이것이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며 이 방안은 남북 간 교류협력의 확대를 주요골자로 하는 1988년 7월의 ‘7․7선언’과 동년 10월 유엔총회에서 북한과 조건 없는 군축 및 군비통제 협상 의사를 밝힌 연설의 연장선상에 있다.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대해 북한은 “통일 문제를 전국적인 범위에서 하나의 제도를 수립하는 문제로 보고, 복잡한 단계를 설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사실상 통일을 바라지 않은 것”이라고 평가절하하며 1민족 2체제의 통일국가 형식을 갖춘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방안을 계속 주장했다.

내용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핵심은 과도적 통일체제로 ‘남북연합(Korea Commonwealth)’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연합을 구성해 남북 간 개방과 교류협력을 실현하고 민족사회의 동질화와 통합의 기반을 다져나가자는 것이다.

남북연합은 최고의결기구로 ‘남북정상회의’, 남북 정부대표로 구성되는 ‘남북각료회의’, 남북 국회의원으로 구성되는 ‘남북평의회’, 이를 위한 실무문제를 관장하는 ‘공동사무처’ 등을 두고, 서울과 평양에 상주 연락대표를 파견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러한 남북연합기구와 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비무장지대 평화구역 내 ‘평화시(平和市)’를 건설하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남북평의회의 경우는 쌍방을 대표하는 동수의 남북 국회의원으로 구성하며 통일헌법안을 기초하고 통일국가 건설에 따르는 구체적 절차를 논의한다. 통일헌법안이 마련되면 이를 민주적 절차와 방법을 거쳐 확정․공포한 뒤, 이 헌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통일국회와 통일정부를 구성하여 하나의 통일된 민족국가를 완성하자는 것이다. 이때 통일국회는 지역대표성에 입각한 상원과 국민대표성에 입각한 하원으로 구성되는 양원제로 한다.

이러한 과정을 밟기 위하여 남북대화를 추진하고 신뢰를 회복해 나가는 가운데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여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본방향과 남북연합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사항 등을 담은 ‘민족공동체헌장’을 채택한다. 그리고 통일국가의 미래상으로 자유와 인권, 행복이 보장되는 민주주의 국가건설을 제시하고 있다.

남북연합은 국가연합(confederation)이나 연방(federation)과 달리, 통일을 지향하는 과도적이고 특수한 결합형태다. 즉 1민족 내부의 2체제 연합 형태로 남북연합 안에서 남북은 각각 주권국가로 남지만 국제법상의 관계가 아닌 국내법에 준하는 특수한 법적 유대관계를 갖게 된다. 따라서 남북연합 안에서 남북관계의 기초가 되는 ‘민족공동체헌장’의 성격은 국가 간 조약이 아닌, 국내법적 협정에 가까우며, ‘7․7선언’에서 남북 간 교역을 민족내부교역으로 간주한 것도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통일방안의 가장 큰 특징은 민족통일을 통해 국가통일로 나아가자는 것이며, 이를 위해 중간단계를 설정하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남과 북에 서로 다른 체제가 있다는 분단 현실을 인정한 바탕 위에서 공존공영하면서 민족 공동생활권을 형성해 나가고, 여건이 성숙되면 민족 전체의 의사에 따라 정치적 통합을 이루자는 것이다.

현황

1994년 8․15 경축사를 통해 김영삼 대통령이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으로 명칭을 변경했지만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기조와 골격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의의와 평가

통일의 주역이 민족구성원 전체이며 통일국가는 민족 전체의 의사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노태우 정부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국민들의 다양한 여론을 수렴해서 만들어졌다는 점에 가장 큰 의의가 있다.

노태우 정부는 새 통일방안 입안을 위해 258회에 걸쳐 세미나․간담회를 개최했으며, 정치권뿐 아니라 학계, 언론계, 종교계, 문화계, 경제계, 여성계 등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했고 여론조사를 통해 국내 대중의 여론을 모았으며 해외교민사회의 여론까지도 수렴했다.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민족공동체의 회복과 발전을 통한 통일이라는 접근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념과 체제의 상이성으로 인한 남북 간 대결․적대구조를 극복하고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으로 나가는 실천적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부정적 평가도 있는데 국민의 여론을 수렴했다고는 하지만 학자, 전문가, 관료 등 몇 사람의 연구․구상으로 작성한 방안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한 것이라고 할 수 없으며, 더욱이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 약점이라고 지적되었다.

그리고 5공화국 청산과 민주화 등의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발표되었다는 점에서 대(對)북한용이기보다는 대내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 외에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남북연합과 관련된 내용으로 개념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진보와 보수 모두에서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남북한 통일정책의 비교분석」(임혁백, 『남북한통합론: 이론적 및 경험적 연구』, 1992)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특징과 평가」(이창헌, 『동북아연구』 9, 1991)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정대규, 『통일문제연구』 14권, 1990)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정책기초와 실천방향」(이홍,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 논집』, 1989)
통일부 통일교육원(www.uniedu.go.kr)
집필자
서보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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