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의 권익 옹호와 함께 건전한 참여의식을 고취하고, 잠재능력을 계발하여 농인의 재활 및 자립을 도모하며, 완전한 사회참여와 실현을 지원하고, 정책건의 및 농인에 대한 인식개선사업을 하는 데 목적을 두고 1946년 설립한 사회복지 단체이다.
1946년 정동섭, 김태수, 김영배 등의 발기로 조선농아협회(朝鮮聾啞協會) 창립위원회를 구성하여 초대회장 김동식과 부회장 정동섭이 선출되었으며, 회원등록과 함께 재정 확보를 위하여 35명의 단원으로 농아연극단을 구성하여 작품발표와 함께 계몽활동을 하였다. 그 후 부회장인 정동섭이 탈퇴하여 대한농아계몽협회(大韓聾啞啓蒙協會)를 발족시켜 농인 단체가 양분되었다.
1947년 2대 회장에 이윤의가 취임하면서 처음으로 창립기념 좌담회를 YWCA에서 실시하였다. 좌담회에는 미국농아협회 윌딩여사와 YWCA 총무, 국립맹아학교장 전영택 등 다양한 사회 저명인사들이 참석하였다. 그 후 1948년 8월 제3차 총회에서 협회의 명칭을 대한농아협회(大韓聾啞協會)로 개칭할 것을 가결하였다. 협회에서는 원활한 운영을 위하여 사업을 하기로 하고 이 사업을 위하여 서울시장으로부터 7백만 원의 기부금 모금 허락을 받아 실시하게 되었다. 그 당시 사업으로는 목공, 피복, 양화, 미술, 자수, 인장포 등을 협회 직속으로 두고 양성교육과 관리를 하였으며, 농학생들을 위한 농교육사업과 문맹농인을 위하여 야간부를 개설하여 운영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활동이 잠시 중단되었다가, 1952년 9월에 협회의 명칭을 한국농아인협회로 변경하여 다양한 국내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국내의 활동으로 국가공인수화통역사자격인정시험 제도화, 민간자격 청각장애인통역사 양성 실시, 한국수화사전 출판과 전문수화서적 출판, 외국수화사전 변역, 전국에 수화통역센터를 개소하였으며, 국제행사로 아·태농아인체육대회, 제74차 세계농아인연맹 이사회의 등을 개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