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유적지에는 금성대군의 신단과 순의비(殉義碑)가 있으며 금성대군과 함께 처형당한 이보흠과 지역 선비들을 추모하기 위한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매년 봄과 가을에 지방 유림들이 제사를 지낸다.
『순흥읍지』에 따르면 금성대군신단을 처음 조성한 사람은 홍천군현감 이대근으로 비밀리에 단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1691년(숙종 17)에 사육신이 복직되자 1693년(숙종 19) 부사 정중창이 금성대군이 유배되었던 자리에 처음으로 단(壇)을 쌓았다고 한다. 이후 1719년(숙종 45)에 부사 이명희(李命熙)가 상소하여 3개의 단으로 고쳤고, 1742년(영조 18)에는 경상감사 심성희(沈聖希)가 단소(壇所)를 정비하였다. 1980년에는 신단 앞에 제청(祭廳)과 주사(廚舍)를 건립하였다.
금성대군(1426-1457)은 세종의 여섯째 아들이자 단종의 숙부이다. 1456년(세조 2) 사육신(死六臣)과 함께 단종복위운동을 추진하다 순흥으로 유배되었다. 이듬해금성대군은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 및 지역 사족(士族)들과 더불어 단종 복위를 도모하였다. 그러나 사전 밀고로 발각되어 거사를 도모했던 사람들과 함께 참형을 당하고 말았다. 숙종연간에 금성대군과 함께 순절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단(壇)을 설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금성대군신단은 2개의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사주문을 들어서면 제청과 주사가 마주하고 있고 일각문으로 들어가면 토석담장 안에 신단이 조성되어 있다. 기단은 장대석으로 조성하였으며 기단 앞 3곳에 계단을 설치했다. 기단 위에는 품(品)자 형으로 돌로 만든 3개의 단이 조성되어 있다. 금성대군의 신단은 중앙 뒤쪽에 있는 단으로 서쪽에는 금성대군성인신단지비(錦城大君成仁神壇之碑, 높이 140㎝, 폭 55㎝, 두께 24㎝)가 있다. 금성대군 신단 앞에 있는 동쪽 단은 이보흠을 모신 단이며, 서쪽 단은 함께 순절한 선비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단이다.
금성대군신단은 단종 복위운동과 관련된 유적으로 18세기 국왕에 대한 의리가 강조되고, 탕평정치가 활성화되는 역사적 상황과 깊은 관련이 있다. 당시 인신(人神)을 위해 설치한 제단의 사례는 극히 드물고 제단도 잘 보존되어 있는 등 조선 후기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가치를 지닌 유적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