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원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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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사
제도
고려시대 정8품의 무반직인 산원(散員)들의 합좌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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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 정8품의 무반직인 산원(散員)들의 합좌기구.
내용

『고려도경(高麗圖經)』조예산원(皁隸散員)조를 보면, “무신(武臣)의 자제가 병위(兵衛)의 직책으로 나아가게 되면 대개 그것(散員)에 보임시킨다”라고 하여 산원이 특수한 무관직임을 이해할 수 있다. 장군방(將軍房)이 장군들을 위한 합좌기구이고 낭장방(郎將房)이 낭장(郎將)들을 위한 합좌기구인 반면 산원방(散員房)은 산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생겨난 기구였다.

1령(領)의 병력수는 1,000명이고 영(領) 밑에 낭장·별장(別將)·산원(散員) 등이 지휘하는 200명 규모의 단위부대가 존재하였다. 산원이 정확히 몇 명을 지휘하였는지 명확한 기록은 없다. 대(隊)가 25명, 오(伍)가 50명으로 편제된 부대단위였음을 볼 때, 산원은 100명, 별장은 150명, 낭장은 200명의 병력을 지휘하는 지휘관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기준으로 볼 때 1령에는 10명 정도의 산원이 배치되어 있었으며, 중앙군이 총 45령이므로 전체 450명 정도의 산원이 편제되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산원은 금군(禁軍)에 보직되었을 때 주로 지유(指諭)와 행수(行首)직에 많이 보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고려사(高麗史)』「여복지(輿服志)」의위(儀衛)조에 “순검좌우부 영도장이인 지유육인 낭장별장산원교차 의패동상(巡檢左右府 領都將二人 指諭六人 郞將別將散員交差 衣佩同上)”이라고 하여 낭장·별장·산원이 교대로 지유에 보임되고 있다. 한편 이의방(李義方)·이고(李高) 등이 견룡행수산원(牽龍行首散員)에 보임되었던 사례가 확인된다.

참고문헌

『고려사 병지 역주』(이기백·김용선, 일조각, 2011)
『고려 금군 연구』(김낙진, 서강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2)
『고려병제사연구』(이기백, 일조각, 1968)
「고려 경군고」(이기백,『고려병제사연구』, 일조각,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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