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도경(高麗圖經)』조예산원(皁隸散員)조를 보면, “무신(武臣)의 자제가 병위(兵衛)의 직책으로 나아가게 되면 대개 그것(散員)에 보임시킨다”라고 하여 산원이 특수한 무관직임을 이해할 수 있다. 장군방(將軍房)이 장군들을 위한 합좌기구이고 낭장방(郎將房)이 낭장(郎將)들을 위한 합좌기구인 반면 산원방(散員房)은 산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생겨난 기구였다.
1령(領)의 병력수는 1,000명이고 영(領) 밑에 낭장·별장(別將)·산원(散員) 등이 지휘하는 200명 규모의 단위부대가 존재하였다. 산원이 정확히 몇 명을 지휘하였는지 명확한 기록은 없다. 대(隊)가 25명, 오(伍)가 50명으로 편제된 부대단위였음을 볼 때, 산원은 100명, 별장은 150명, 낭장은 200명의 병력을 지휘하는 지휘관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기준으로 볼 때 1령에는 10명 정도의 산원이 배치되어 있었으며, 중앙군이 총 45령이므로 전체 450명 정도의 산원이 편제되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산원은 금군(禁軍)에 보직되었을 때 주로 지유(指諭)와 행수(行首)직에 많이 보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고려사(高麗史)』「여복지(輿服志)」의위(儀衛)조에 “순검좌우부 영도장이인 지유육인 낭장별장산원교차 의패동상(巡檢左右府 領都將二人 指諭六人 郞將別將散員交差 衣佩同上)”이라고 하여 낭장·별장·산원이 교대로 지유에 보임되고 있다. 한편 이의방(李義方)·이고(李高) 등이 견룡행수산원(牽龍行首散員)에 보임되었던 사례가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