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통신문학 (PC)

현대문학
개념
1990년대 PC통신망을 기반으로 창작 · 유통 · 소비되었던 문학. 통신문학 · PC 문학 · 컴퓨터 통신문학 · 사이버문학.
이칭
이칭
통신문학, PC 문학, 컴퓨터 통신문학, 사이버문학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1990년대 PC통신망을 기반으로 창작 · 유통 · 소비되었던 문학. 통신문학 · PC 문학 · 컴퓨터 통신문학 · 사이버문학.
개설

대개 무명의 아마추어 작가에 의해 PC통신망의 동호회 게시판에 연재물 형식으로 게재되었던 소설들을 일컫는다. 보통 1회에 200자 원고지 20∼30장 분량으로 연재되었다. 처음에는 SF과학소설 일변도이던 것이 점차 순수소설, 추리소설로 확대되었고, 여기에 시와 수필을 쓰는 여러 작가들이 합세하면서 점차 하나의 독특한 문학 형태로 자리 잡았다. 이중 유명한 작품들은 책으로 출판되거나 드라마로 제작되어 유명세를 탔다. ‘통신문학’, ‘PC 문학’, ‘컴퓨터 통신문학’, ‘사이버문학’ 등 다양하게 불렸다.

연원 및 변천

PC통신문학은 PC통신 서비스와 함께 탄생했다. PC통신 천리안이 1990년을 전후하여 시범 서비스를 개시했을 무렵, 이성수의 「아틀란티스 광시곡」, 방재희의 「사형수」, 남인환의 「모성」 등이 유머 게시판에 연재되면서 PC통신문학이라는 새로운 문학 형식이 나타났기 시작했다. 그 후 1992년 하이텔, 1994년 나우누리, 1996년 유니텔이 각각 PC통신 서비스를 시작했고, 여기에 PC통신문학 전용 게시판이 개설되고 수많은 문학동호회가 만들어지면서 통신문학이라는 새로운 문학 형식이 인지도를 넓혀갔다.

통신문단은 아마추어 신인들의 등단 통로가 되었다. 송경아, 김영하, 김원, 방재희, 김호진, 황세연 등은 통신문단에서 이름을 얻어 차츰 기성문단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간 작가들이었다. 반면 기성문단의 작가가 통신문단을 활용하여 작품 활동을 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1992년복거일이 「파란 달 아래」를 하이텔에 연재하면서 시작된 이런 경향은, 그후 한수산, 주인석, 이순원, 박상우, 윤대녕, 하재봉 등에게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영화감독 출신인 유상욱이 「고양이 여인숙」이란 작품을 발표하는 등 전문 직업인들이 통신공간에서 자신의 전공을 살려 작품 창작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천리안과 나우누리에서는 릴레이소설이라는 장르도 나타났다. 릴레이 소설은 전문 추리작가가 등장인물과 기본 구도만을 설정하고, 독자들이 자유롭게 줄거리를 이어가는 형식의 집단 창작적 성격을 띠는 글쓰기였다. 예컨대, 이상우의 『귀여운 악녀』는 1회에서 주경희가 최초의 민선시장으로 당선되어 축하연을 벌이던 도중 감쪽같이 사라지는 설정이 제시되고, 2회부터는 독자가 자유롭게 참여하도록 했으며, 또한 하재봉, 이우혁, 이성수가 공동으로 참여하여 창작한 「피그말리온」이라는 다른 형태의 집단 창작도 선보였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천리안의 ‘컴퓨터문단’이나 하이텔의 ‘하이텔문학관’이 각각 특색 있는 운영을 내세우면서 PC통신문학의 발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천리안 ‘컴퓨터문단’은 작가 개인별로 독립된 연재 공간을 제공하였고 ‘나도 작가’란 및 ‘이달의 우수작’ 코너를 운영하여 잠재적인 문학가 지망생들을 문단으로 불러들였다. ‘하이텔문학관’은 기존 문단의 대표적인 작가들을 초빙함으로서 PC통신문학의 수준을 한층 높였고, 장르 문학에 치중되어 있던 PC통신문학에서 비교적 약세였던 순수 문학을 활성화시켰다. 한편 1995년에는 PC통신문학이 국내 최초로 TV드라마로 제작돼 화제가 되었다. SBSTV는 통신문단에서 연재하였던 하민의 『아프로디테의 아이들』을 16부작 미니시리즈로 방영하였다.

내용

통신문학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작품은 이우혁의 『퇴마록』이다. 초자연적인 존재들과 싸우는 퇴마사들의 활동을 다룬 이 작품은 1993년 7월 하이텔문학관의 ‘납량특집란’에서 첫선을 보였다. 그후 1994년부터 2001년까지 국내편, 세계편, 혼세편, 말세편 네 시리즈 19권의 구성으로 출간되어 모두 1백만권 이상 팔리면서 PC통신문학을 세상에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는 1997년 10월부터 하이텔 게시판에 연재되었다. 드래곤과 주인공인 후치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모험 판타지소설이다.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12권의 단행본으로 출판되었고, 머드게임이나 만화로도 만들어졌다.

염승호의 범죄유전학을 소재로 한 SF소설 「하이브리드」는 홍익출판사가 제정한 컴퓨터통신문학상 제1회 수상작이었다. 미국 국립 보건원에서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박사가 귀국해 범죄의 유전성을 연구하던 중 연구 결과를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사용하는 여러 악한들을 영웅적으로 퇴치한다는 줄거리로, 통신문학의 새 영역을 개척해 보려는 아마추어 작가의 의도적인 시도를 엿볼 수 있다. 유상욱의 「고양이 여인숙」은 영화감독인 작가가 하이텔 영화 동호회에서 공포소설 코너를 읽다가 우연히 쓰기 시작했다는 소설이다. 이 작품은 서해 안면도의 한 여인숙에 투숙한 남녀가 우연히 4차원의 세계에 빠져들어 괴물 고양이를 만나 모험을 겪는다는 내용의 공포 SF소설이다. 사이버 섹스 등 가상현실 속에서의 사랑을 그린 애정소설들도 많았다. 허만형의 「사이버 베아트리체」는 현실에서 사랑에 실패한 주인공이 컴퓨터에 이상적인 여자를 창조해 놓고 환상적인 사랑을 나누는 줄거리이다.

현황

PC통신은 과도기적인 형태의 통신 서비스로서, 지속성과 연속성이 부족한 매체였다. PC통신 서비스는 채 10년을 버티지 못하고 점차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좀 더 열린 인터넷 공간에 주도권을 넘겨주게 되었고, 그에 따라 PC통신문학도 점차 세력을 잃고 사라져갔다. 인쇄매체 도입기였던 개화기에 잠깐 나타났다 사라져 갔던 신소설이 근대소설의 등장을 알리는 전주곡 내지는 서막에 지나지 않았던 것처럼, PC통신문학은 본격적인 디지털문학을 위한 전주곡으로 울려퍼지다 사라져 버릴 운명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하이퍼텍스트 문학과 같은 본격적인 디지털문학이 성장하지 못하고 있으며, 인터넷에서도 PC통신문학이 블로그 소설, 예컨대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 박범신의 「촐라체」 등의 작품으로 지속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의의와 평가

기성 작가와는 다른 독특한 상상력과 사이버컬처에 익숙한 젊은 작가들이 주도했던 PC통신문학은 통신을 통해 즉각적으로 창작의 결과가 공개되었다. 이를 통해 작가는 독자의 반응을 신속하게 알 수 있는 장점이 있었으며, 독자는 창작의 과정에 제한적이긴 하지만 영향을 미치는 색다른 경험이 가능했다.

이런 실시간적 양방향성으로 인해 문학이 구비문학 시대의 구술성에 한 발 다가가게 되었다거나 근대 이후 단절되었던 문학의 공동창작, 집단창작 전통의 회복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진단하는 평론가도 있었다. 하지만 문학 활동의 양방향성이 작품의 질을 올리는데 아무런 긍정적 역할을 하지 못했고 오히려 어설픈 아마추어리즘을 양산하는 역할을 했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놓음으로써 통신문학의 대중적 확산에 대한 기성문단의 위기 내지는 경계 의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PC통신문학은 쉽고 간결한 구어체 문장을 구사하여 독자들을 넓혀가면서 기존의 화석화된 문학작품에 실증을 느끼던 독자들에게 부담 없는 읽을거리를 제공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PC통신문학의 등장을 단순히 표현방식의 변화라는 차원을 넘어 문학의 존재 양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문학적 사건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엄밀한 기준으로 봤을 때, PC통신문학은 전통적인 인쇄 기반의 글쓰기나 작품발표 방식에서 별로 벗어나고 못했다. 작성된 원고를 적당한 크기로 나눠 순차적으로 통신공간에 올리는 방식은 한때 유행했던 신문연재소설의 작품발표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독자추수주의, 소재주의, 노출증, 관음증, 선정성, 인간미 결여 등의 한계가 드러냄으로써 진지함이 결여된 흥미 위주의 저질 상업문화로 평가될 여지도 많다.

참고문헌

『하이퍼텍스트 서사』(장노현, 예림기획, 2005)
「PC통신문학의 긍정적 수용을 위한 시론」(김재국, 우암논총 17, 1997)
「PC통신문학의 발달史」(이성수, cybermunhak.com/1/pc.html, 2004)
집필자
장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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