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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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작품
1971년 피바다가극단이 1936년 8월 김일성이 처음 공연했다는 작품을 현대적 양식으로 재창작한 가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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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71년 피바다가극단이 1936년 8월 김일성이 처음 공연했다는 작품을 현대적 양식으로 재창작한 가극.
내용

작품 「피바다」는 김일성이 항일무장혁명투쟁 시절이었던 1936년 8월 ‘혈해’라는 제목으로만주 만강부락에서 처음 공연한 것으로 1971년 피바다가극단에서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창작하여 무대에 올린 가극이다. 「피바다」는 「꽃파는 처녀」, 「한 자위단원의 운명」과 함께 김일성이 직접 창작하였다고 주장하는 3대 ‘불후의 고전적 명작’으로 통한다. 1960년대부터 다양한 예술장르로 창작되기 시작하였다. 1969년에는 백두산창작단에서 예술영화 「피바다」로, 1971년에는 피바다가극단에서 혁명가극 「피바다」로, 1973년에는 혁명소설 「피바다」와 교향곡 「피바다」로 발표하였는데, 각 작품은 해당 장르의 전형적인 대표적 작품으로 평가한다.

여러 장르 중에서 핵심은 혁명가극 「피바다」이다. 혁명가극 「피바다」는 김정일이 주장한 주체적 문예 방침에 의해 제작된 첫 번째 혁명가극으로 북한에서는 ‘주체적인 문예사상과 혁명적인 가극건설에 관한 방침’을 그대로 구현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한다. 혁명가극 「피바다」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절가화 된 음악과 노래, 방창의 도입과 활용, 주체적인 배합관현악과 무용, 무대미술 등에서 새로운 형상수단을 유기적으로 결합함으로써 기존의 가극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주제와 방식의 혁명가극 전형을 창작하였기 때문으로 평가한다.

혁명가극 「피바다」 창작이후 혁명가극을 포함하여 모든 공연예술은 「피바다」의 창작방식을 따르게 하면서 이른바 ‘「피바다」식 혁명가극’의 전범이 되었다. 혁명가극 「피바다」는 암울한 시기 조국을 잃고 일제의 토벌을 피해 다니다 김일성의 이야기를 듣고 희망과 용기를 갖고 조국독립을 위해 나선다는 혁명화 과정을 내용으로 7장 4경으로 구성되었다.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절 가난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최순녀는 지주의 강압을 견디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떠다니다 일본군에 의해 남편도 잃고 원남이, 갑순이, 을남이를 데리고 배나무 골을 떠나 상동마을에 정착한다. 원남이와 갑순이 항일유격대 대원인 조동춘과 함께 야학을 조직하여 활동한다. 야학하는 큰아들 원남을 보면서 불안해하지만 공작원 조동춘의 말을 듣고는 공작활동을 돕는다. 한편 유격대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일본군은 총력을 동원한 소탕작전을 벌인다. 일본군의 토벌작전이 시작되자 최순녀는 조동춘의 지시를 받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대규모 폭동을 일으켜 일본군을 소탕한다. 원남이도 참가한 폭동이 끝난 후 마을 청년들은 모두 유격대를 찾아 떠난다.

참고문헌

『북한 예술의 창작지형과 21세기 트렌드』(전영선ㆍ김지니, 역락, 2009).
『북한의 방송언론과 예술』(북한연구학회 편, 경인문화사, 2006).
『북한의 문학과 예술』(전영선, 역락, 2004).
『북한의 공연예술Ⅰ』(서연호·이강렬, 고려원, 1990).
집필자
전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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