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거지」·「여직공」·「나의 요구」 등을 저술한 시인.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923년 4월 『경성일보』 편집부 겸 학예부기자로 활동했고, 이후 『동아일보』, 『시대일보』, 『중외일보』, 『조선일보』 등의 기자생활을 했다. 1925년 이후 경성여자미술학원과 조선문학원 등에서 강의를 했으며 『조선중앙일보』 폐간과 함께 기자생활을 그만두고 평안북도 강계로 가서 홍문사 총지배인으로 일했다. 1948년 교통부에서 촉탁일을 보다가 고향 용인으로 돌아가 교사로 지냈다.
1955년 12월부터 1956년 8월까지 서울신문사 편집국장으로 지냈고 이때 3·1절, 6·25, 8·15 등의 기념시를 신문에 발표하였다. 1956년 9월부터 1960년까지 『세계일보』 논설위원으로 있으면서 유주(柳州)라는 필명으로 야담을 발표하였다. 1964년 간암으로 별세하였고 용인에 묘가 있다.
그는 평기자 중심의 민주언론단체 ‘철필구락부’(鐵筆俱樂部) 사건으로 『동아일보』에서 파면되었다. 철필구락부사건은 기자 급료인상 투쟁으로 파업기자들이 사표를 제출하며 강경하게 대응한 사건이다. 그는 필화사건에도 연루되어 실형을 선고받았다. 『중외일보』의 ‘거미줄란’에 집필한 기사가 명예훼손죄로 기소되어 금고 3개월을 선고받았다. 일제에 직필로 저항하다가 형무소에 수감되는 일(1926.11.6∼1927.2.5)도 있었다.
1925년 「거지」(『시대일보』1925.11.30)로 문단에 나왔으며 1926년 「여직공」, 「희생자」, 「아오의 무덤에」, 「향락시장」(『개벽』26, 4) 등을 발표하였다. 프롤레타리아 목적의식에 맞춰 「나의 요구」, 「나의 행진곡」, 「가두의 선언」, 「민중의 행렬」 등을 발표한다. 카프의 준기관지 성격을 띤 『문예운동』2호(1926.5)에 「신흥문예의 예술적 가치」라는 평론을 실어 카프노선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였다. 1920년대 중반 이후 30년대 후반까지 『개벽』, 『조선지광』, 『조광』, 『삼천리』, 『시대일보』, 『조선일보』 등에 시, 소설, 평론, 수필을 발표했고 세계의 프로시를 번역해서 싣기도 했다. 시집으로 2014년에 『유완희시선』이 출간되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적구 유완희의 생애와 시세계」(정우택, 『반교어문연구』3, 반교어문학회,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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