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19년 서울시내 고보에 다니는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미술단체.
연원 및 변천
11월 1일 고려화회를 개최한 이후 11월 21일부터 실기교육이 시작되었다. 장소는 종로 중앙청년회였으며, 매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수채화와 서양화 강습을 실시했는데, 야마모토 바이가이가 수채화를, 마루노 유카타가 유화교육을 담당했다. 고려화회가 경성시내의 고보생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연유는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한 고희동이 여러 고등보통학교에서 미술교사를 하면서 만난 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창립회원인 이제창, 안석주, 장발 등이 졸업 후 일본 유학을 떠나면서 이 단체는 오래가지 못하고 해체되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근대미술의 역사』(최열, 열화당, 1997)
- 『30년대 문화예술인들』(조용만, 범양사, 1988)
- 『풍류세시기』(이승만, 중앙일보사, 1977)
- 「고려화회 출현」(『매일신보』, 1919.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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